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너 미쳤니? 왜 그랬니?”

이수현 슬기엄마 2011. 3. 1. 17:58

너 미쳤니? 왜 그랬니?”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는데, 등에 들쳐 업은 애는 배고프다고 울며 보채고,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하는데 불씨는 안 살아나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전래동화 속 아낙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카운터가 휴가를 가 버려 그가 했던 낯선 일까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에 이리저리 몸은 바쁜데 효율은 없이 진땀 혹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나
.

나는 카운터가 휴가를 떠난 동안 지옥의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휴가 중이다. 물론 내 카운터가 지금 지옥의 한 주를 살고 있을 게다
.

무식함과 피곤함의 불협화음


지옥의 주간은 그 전주부터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이 서린 데서 시작됐다. 연속 3일간 하루 2시간미만의 수면시간으로 버티다가-이틀에 한 번 당직이지만 당직이 아닐 때도 집에 가지 못하고 뭔가 꼼지락거리면서 할일이 많았다-4일째 당직을 서는 날. 나는 늦은 시간도 아닌 저녁 10시 반 경 1년차 당직으로부터 call을 받았고 직접 그의 얼굴을 대면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환자가 vital stable하고 mental alert한데, telemetry V-tach이 계속 지나가요
.”

“(
유령 같은 표정으로) 얼마나 오래 지나가는데요
?”

오늘 입원한 환자인데요, telemetry 걸면서부터 non-sustained V-tach이 살짝 살짝 몇 번 지나갔는데요, 좀 전에는 한 6분 지나간 것 같아요
.”

“(6
분이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음. 사실 들은 기억이 없음) 그래요? Vital stable하다구요? 제가 가서 한번 볼게요
.”

“(
멍한 상태에서) 환자분, 괜찮으세요
?”

지금은 괜찮다는 환자 말에 나는 다시 의국의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신환 review도 하고 내일 외래로 올 환자의 퇴원요약지도 정리하면서 능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2
시간이 지나 다시 1년차 당직의 call. “선생님, 아까 그 환자가 이번에는 LOC(loss of consciousness)가 있으면서 V-tach이 지나갔어요
.”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면서 이렇게 두고 볼 환자가 아닌 것 같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아마 한참을 졸다 깨다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수면이 보충이 되어 정신이 들었던 모양이다
.

다시 환자를 보러 갔을 때 환자는 내 앞에서 의식을 잃어 주었고 EKG monitoring 상으로 non-sustained V-tach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환자는 tachybradycardia syndrome으로 지난 4월에 pacemaker를 넣었고 어제 박동기클리닉에 내원하여 뭔가 setting을 바꿨다고 했다
.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당직 3년차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환자는 자꾸 정신을 깜박깜박 잃는 모습을 보이더니 seizure like activity, bradycardia가 심해지면서 Torsades de pointes가 뜨는 것이 아닌가
.

환자는 급격하게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춤을 추는 EKG에 너무 당황했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솔직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새벽 3시 반 교수님께서 병원에 도착, 환자의 박동기 setting 90회로 늘리자마자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환자가 아주 stable하게 숨을 쉬고 상황이 종료되었다
.

죽다가 살아난 환자


나는 그 새벽부터 하루 종일 여러 윗사람들로부터너 미쳤니? 왜 그랬니?”라는 말을 무수히 들어야 했다. 최고 압권은 내가 찍은 12 lead TdP EKG였다. 교수님께서는 rhythm strip이 아닌 12 lead EKG TdP가 찍힌 건 처음 보셨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런 EKG를 찍기 전에 대부분 management를 다 하기 때문에 그런 rhythm은 잡힐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웬 창피인가!

나는 그 일이 있은 다음 주 화요일 teaching conference로 환자의 case를 발표하게 되었다. 어떤 언어로 그 다양한 EKG를 읽어야 할지, 박동기 리듬은 어떻게 reading을 해야 하는지, 그 환자는 왜 전날 박동기 클리닉에서 setting을 바꿨는지, 바꾼 후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궁극적인 event는 어떤 경과를 거쳐 발생했는지, 나는 어떤 대목에서 오판을 한 것인지 공부할 것도 많고 수없이 EKG를 들여다보아야 했다
.

그러나 그 주는 바로, 내가 카운터 휴가로 인해 2배로 일해야 하는 주간이었다. 3일 연속 응급실과 병동당직을 계속 서야 했고 매일 6~7명의 신환이 들어왔고, 그만큼의 환자가 퇴원을, 또 그만큼의 환자가 다인실로 병실을 옮기기 때문에 오후에 EMR을 띄워보면 환자가 서너 명을 남기고 모두 바뀌어 있었다. Consult를 제때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수술 때문에 operability consult를 낸 외과, 신경외과에서 신경질적인 전화도 점점 잦아진다
.

그러나 무엇보다 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네가 어떻게 준비를 해도 넌 혼나게 되어 있다는 농담 반 진담 반 교수님의 말 때문이 아니라, 정말 나 때문에 사선을 넘어갔다 온 그 환자, 나의 잘못으로 인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갔으면 아마 V-fib으로 넘어가서 arrest가 났을 거라는 사실이 내 가슴과 머리를 쥐어박아도 잊혀지지 않았다
.

나는 발표할 case를 준비하다가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다가도, Torsades de pointes를 공부하다가도, 계속되는 문의전화를 받는 매 상황에서도 그 환자가 마음에 떠나지 않았다. 이제 2년차가 되었으니 1년차 때처럼 환자 management가 잘못되어 하룻밤 사이에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미숙함은 없으려니 했던 나의 오만함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

case를 발표하기 전까지 나는 정말 인생 최대의 위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이 손에 안 잡히니 자꾸 실수하고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되면서 내 기분은 점점 다운되었다. 정작 발표를 하려면 EKG reading도 잘 안 되고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TdP의 이론에 대해서는 공부를 했지만, 정작 이 환자에서 EKG를 보면서 어떤 시점에 어떤 변화를 감지했어야 했는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했을지에 대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발표 전날, 윗년차 선생님, fellow 선생님, 교수님들로부터 꾸중 반 가르침 반 싫은 소리를 듣고서야 내 입에서 겨우 뭔가 우물우물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

누나도 나와서 도와줘야 해!’

이번 사건은 나의 무식함 때문에 조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환자가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뭔가 심각한 말을 들어도 반응이 있기까지 내 두뇌회로가 작동하는 시간이 너무 느렸다. 오늘은 휴가 5일째인 목요일이지만, 어제까지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만 하면 계속 졸았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떠났지만 내가 심하게 조는 바람에 슬기는 화가 단단히 났다. 나는 휴게소에 도착할 때마다 커피를 마셨지만 쏟아지는 잠을 조절할 수 없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9시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언제 잠자리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수면을 4일동안 취하고 나니 오늘에야 비로소 정신이 좀 든다. 그 사이 내 카운터는 힘들고 처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마치 1주일 전에 내가 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 때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건 같이 일하는 카운터밖에 없었다. 그는 휴가 중 이틀을 반납하고 병원에 나와 나를 도와주었다. 그때의 고마움이란…. 물론 그는 농담처럼 나에게누나도 나와서 도와줘야 해!’라고 말했다. 당연하지
.

오늘 집에 도착했으니 내일 병원에 가마. 병원에서 연차별 경계를 넘어서, 부서별 경계를 넘어서 누군가의 일을 떠안아주기는 정말 힘들다.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한 배를 탄 동기, 같은 파트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

인생을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인생의 위기 운운하는 게 다소 건방져 보이기는 하지만, 내 카운터와 나는 인생의 위기를 넘기고 있다고 서로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서로에게 위기를 잘 넘겨야 한다고 궁상을 떨면서, 서로가 없으면 절망스러운 마음을 공유할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

휴가도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 이제 더 이상 무식함이 용서되지 않는 명실상부한 2년차로 자리 잡아야 할 때다.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의욕도 살아나리라. 휴가 끝 무렵, 마음만이라도 의욕의 불씨를 지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