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다

이수현 슬기엄마 2011. 3. 1. 18:16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다

 

의료사회학을 처음 공부하며 논문을 통해 접한병원은 일종의 소우주라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병원이라는 하나의 단위 조직 내에서, 우주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도 다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리고 내가 직접 이 거대한 대학병원 안에서 실습을 도는 의대생으로, 음지에서 일하는 인턴으로, 환자를 둘러싼 모든 시공간에서 총대를 메야 하는 내과 1년차로 일하며, 그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내 생활과 사고, 기쁨과 슬픔의 정서, 그 모든 것이 병원 안에서 이루어졌고 병원 안의 질서가 나에게 절대적인 의미체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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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을 돌며, 수많은 파트를 돌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성격의 환자와 가족, 의사와 간호사, 의료진과 행정직 등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처방을 내는 순간 보험심사과와 접촉하며, 의국에서 동료들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매 순간마다, 사람, 조직, 돈이라는 요소를 둘러싼 조직 내 갈등, 병원과 사회의 갈등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나의 관점에서 경험을 해석하였다. 물론 이렇게 우아하고 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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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3년차가 되니 이제 병원만 들여다보고 사는 것이 때론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오래 전에 관계가 끊겨버린 옛 친구들, 뉴스를 보아도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힘들게 돌아가는 세상 일들, 그렇게 세상 속의 병원으로 고립되어 버린 나를 돌아보며 뭔가 나를 세상과 이어질 끈을 찾고 싶지만, 병동을 떠난 시간에는 의국의 컴퓨터 앞에 앉아 한쪽 스크린으로는 EMR 화면을 띄우고 한쪽 스크린으로는 논문 search 화면을 띄우며 마우스를 이쪽 저쪽으로 옮겨가며 뭔가를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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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다간 내 가족을 잃겠다는 위기감(!)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마치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이 들어 새벽 알람에 눈을 뜨고 허둥지둥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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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꼬맹이인줄 알았던 슬기는 사춘기 소녀가 되어 있고 남편과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간략 대화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며 나 대신 살림을 꾸려가는 친정어머니는 만성적인 두통과 허리 통증, 주부습진으로 인해 일상적인 삶의 질이 말이 아니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딸로서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멀리 한 채 나는 수년간 의대생활, 병원생활을 지속하고 있고 그런 나를 가끔 공허한 마음으로 되돌아 본다. 의사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에 웃어 버릇 했더니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감이 떨어진다. 무섭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래방에 가도 90년대 초반 노래까지밖에 부르지 못한다. 사회학을 했던 나는 사회로부터 완전 고립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세상을 향한, 나를 향한 성찰과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고 하루하루를 소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무기력감이다. 내공을 키우기보다는 형식만을 갖추며 면피에 급급하다는 그 느낌. 이러다간 우울증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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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 초반, 한 신장내과 교수님께 크게 혼이 난 이후로 난 term을 짤 때마다 신장내과에 배정될까봐 전전긍긍 마음을 졸였었다. 모든 파트를 골고루 돌아야 한다는 대 원칙하에 나는 3년차가 되어 처음으로 신장내과를 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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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개 투석을 하는 신부전 환자들이고 오랫동안 투석을 하다가 생긴 합병증으로 입원치료를 요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거니와, 그 환자를 간병해 온 가족들의 피로도 극심한 상태이다. 요독 제거가 되지 않아 입맛도 없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한정되어 있으며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매끼 먹어야 하는 약은 한 움큼씩. 시커먼 얼굴로 누워있는 그들을 보면 투석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전쟁이 나면 혈액투석하는 환자들을 위한 특별지정병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다른 과에 비해 입원기간이 길어서인지 한 환자를 꽤 오래 볼 수 있다. 환자에게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고 약도 세심하게 조절해 주어야 하며 그러려면 책도 많이 찾아봐야 한다. 수액조절, 혈당조절 뭐 그리 조절할게 많은지
….

그러나 만성질환으로 평생을 낫지 않고 투석에 의존해야 살아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오히려 세상 일에, 사람 사는 일에 왠지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나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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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환자를 매우 세심하게 진료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교훈 이외에도, 질병의 경제적 육체적 부담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해체, 우리 사회에서 만성질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부양부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특별히 호전될 것도 없고 획기적인 치료의 대안도 없는 만신창이가 된 환자에게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봄을 실천하는 가족들을 보며 썰렁한 내 마음 씀씀이를 반성하게 된다


엊그제 6.10이 지났다. 국가기념일이 되었다며 87 6월 민주항쟁 당시의 흑백사진들이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고 관련자들에 대한 뉴스, 다큐멘터리, 토론회 등이 있었다. 나는 한국 민주화 20년에 대해, 올 대선에 대해, 의료법 개정에 대해, 의협회장 선거에 대해 딱 부러진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을 논하기에 나에게 부여된 병원의 의미가 아직은 너무 크다. 그래서 어쩌면 지난 3년여간 나의 주치의일기에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은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의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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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음 속 어딘가에 렌즈 선택의 기준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병원 안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들이 아직은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모든 일상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지겹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병원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한 주치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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