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러시아 아줌마 진료

슬기엄마 2011. 4. 4. 12:21

러시아 환자들을 가끔 진료한다.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 것이 병원의 또다른 경쟁력 지표가 되고 있나 보다.
다른 분야의 진료나 수술 분야에서는 나름 수요와 공급의 곡선이 만나서 적절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환자를 항암치료 하는 것은 어떨까? 내 짧은 경험상 러시아에 사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국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과정에는 여러모로 난제가 많다.

러시아 환자들 중에 영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100% 통역이 따라붙어야 한다.
나는 환자를 보고 말하지만 환자는 통역관을 보고 말한다. 눈길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통역이 없으면 아무것도 진행할 수가 없다.

나는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 부자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것 같다.
서울에 와서 머무르는 시간 내내가 돈이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신속한 진료와 빠른 결정을 원한다. 물론 항암치료를 시행하는 것 자체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당일 항암치료가 대세이기 때문에 정작 치료 자체는 반나절이면 되는 경우가 많다.
조기유방암 환자가 수술 전 검사를 진행하고 수술을 받는 코스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서울사람, 지방사람 차이없고, 러시아 사람도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장기적인-어쩌면 끝을 알 수 없는- 항암치료가 필요한
재발성 혹은 전이성 유방암은 
필요하면 조직검사를 다시 하기도 하고,
약을 선정하기 위해서 특수 염색을 할 때도 있고,
뭔가 애매하면 영상 검사를 추가로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일률적으로 어떤 프로세스를 진행하지 못하고,
검사 하나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그 다음 검사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여기까지는 러시아 환자나 우리나라 지방 환자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치자.

이들은 1차 항암치료를 우리병원에서 받고, 2차, 3차 항암제 약을 처방받아서 러시아에 가서 맞겠다고 한다. 내가 이 약은 러시아에도 있는 약이니 거기서 진료를 받으시라고 하면, 그들은 러시아에서 처방된 약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바꿔치기가 될 수도 있고, 실재 그 약인지, 농도가 제대로 된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약을 사가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어떤 약은 독성이 강하지 않아 굳이 중간중간 병원에 올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항암제 투여의 원칙은 의사는 환자의 변화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독성이 심하면 용량이나 주기를 조정하고,
항암제를 쓰는데도 병이 나빠지는 경향이 보이면 CT 등의 검사를 해서 약을 바꿔야 한다.
혈액검사를 해서 골수 회복정도를 보고 항암주기를 조정해야 할 때도 있다.
항암치료 중 열이 나거나 설사를 하는 등 부작용이 생기면 늦지 않게 조치받을 수 있도록 교육하고 병원에 오도록 안내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 모든 과정을 러시아에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그냥 날짜 맞춰서 하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명하고 이해하고 답변하는데 시간이 두배이상 걸리니, 첫 환자가 오면 진료시간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국제적으로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진단서도 많이 써야 하고, 진단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도 매우 복잡하다. 처음에는 그걸 잘 모르고, 진단서를 몇 번을 다시 썼는지 모른다. 그래서 러시아 환자가 오면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런데
엊그제 61세-할머니라고 보기에는 젊은- 환자가 러시아에서 수술하고 2기로 진단받았다.
HER2 면역염색 결과가 2+ 여서 유전자검사를 더 해야했지만, 비교적 결정은 쉬웠다.  항암제 4 주기하고, 추가로 허셉틴 더 맞을지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 그런데도 설명하는 과정은 지지 부진. 환자는 걱정되고 궁금한 것이 매우 많은 것 같았다. 치료적인 부분, 치료 외적인 부분, 너무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가서 난 솔직히 너무 짜증이 났다. 그런데 항암제 부작용을 설명하면서 탈모가 될 가능성이 100% 라고 말하니, 이것저것 따지듯 묻던 그녀의 눈에 순간 눈물이 왕창 고인다.

환자는 다 똑같구나...
환자가 눈물을 보이니 나도 마음이 않좋다. 그리고 마음 가짐을 다시 고쳐먹는다.
짜증내지 말자. 낯선 곳에 와서 치료받으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걱정이 많겠는가...

난 여전히 러시아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 와서 항암치료 하는 거 별로 않좋다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진료하기 어렵다. 3주에 한번씩 병원에 올 수 없다고 하면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일단
내 진료실을 찾는 러시아 환자들을 위해서
러시아 통역관과 함께 설명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환자는 다 똑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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