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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진단받은 당신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악성입니다.”

악성이라는게 암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유방암입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무겁게 긴장되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침묵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은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혹은 암 진단을 받고 파랗게 질려버린 환자를 보고 의사도 마음이 초조해져 앞으로 필요한 추가 검사와 치료 일정을 의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침묵의 순간을 무너뜨린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들, 앞으로 의외의 상황에서 침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처음 진단받는 이 순간의 침묵이 가장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침묵의 벽을 허물고 앞으로 나가는 용기도 환자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의사는 그 용기를 잘 북돋워주고 이들 모두가 수퍼맨처럼 씩씩하게 치료받고 일상의 수다스러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아닐까?

 

처음으로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의사인 나는 다음 중 하나로 설명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의 검사결과를 종합해보니 일단 수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술을 할 수 있다는것은 완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다행입니다. 환자분의 병기는 수술 후 나온 조직을 검사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할지를 상의드리겠습니다. 일단 외과 선생님과 수술 날짜를 잡읍시다

 

혹은

수술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지금 종양의 크기도 크고,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전이가 된 것 같아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먼저 합시다. 크기를 좀 줄인 다음 수술을 고려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수술을 하시면 재발의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겨드랑이 림프절에 악성세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를 하고 만약 거기서도 악성세포가 나오면 항암치료를 먼저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혹은

수술을 할 수 있는 병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방에서 병이 시작되어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4기 유방암입니다. 이제 수술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전신 항암치료를 통해 병을 다스리는게 좋겠습니다. 완치는어렵습니다. 다만 병을 잘 조절해서 고통없이 생명을 연장하실 수 는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해봅시다.”

 

환자가 어느 병기에서 진단을 받았는지에 따라 치료의 시작상황이 약간 다르다. 왜 나는 이런 방식으로 치료를 받게 되는지, 병기가 높지도 않다면서 머리가 다 빠지고 구토감도 심한 빨간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지, 왜 나한테만 보험도 안되는 비싼 표적치료제를 권하는지, 누구는 방사선치료를 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지, 누구는 항 호르몬제를 5년먹고 누구는 10년먹고 누구는 먹지 않는지,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이 항암제를 맞게 되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이 모든 상황이 환자 개인의 병 상태, 암세포의 특징 등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개된다. 그러므로 다른 유방암 환자의 치료와 나를 비교할 필요도, 비교할 수도 없고, 하물며 다른 종류의 암 환자들과 치료 방법과 과정이 다르게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또 귀가 얇아져서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의 이야기에 솔깃할 필요도 없다. 담당 의사를 믿고 그와 상의하고 표준적인 유방암 치료 지침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막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이 상황 자체가 얼떨떨하고 의사가 또박또박 이런 설명을 해 주어도 아직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의사는 환자가 마음을 다잡을 시간 동안 잠시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에게 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 초반에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는 것이 현명한 환자로 살 수 있는 첫걸음이다. 다른 암에 비해 유방암은 오래 사는 병이지만 수술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재발되고, 재발되도 치료가 잘 되기 수년을 별 증상없이 지내시는 분도 있어  병의 코스가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난 암이니까’, ‘재발했으니까절망하고 치료를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면 안되는 병이기도 하다. 현명한 환자가 되어 자신의 삶의 스스로 콘트롤하며 지내는 분들이 참 많다.

반면 일부 환자들은 병기도 낮고 수술로 병을 완벽히 제거하여 눈에 보이는 병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하는 재발방지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중에 항암제를 쓰고 있는데도 뇌전이, 뇌막전이, 골수전이 등이 나타나 급격히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악화되면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환자의 병이 급격히 악화과정을 밟고 있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약은 별로 없거나 약을 써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제대로 치료도 못하고 병에게 패배하여 물러나고 마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병기가 높지 않고 예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만한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완치가 가능하다, ‘내가 해낼 수 있다, 이미 많은 환자들이 잘 이겨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위험요인이 많은 환자라면 유방암의 생물학적 특징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고 끊임없이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 수술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증상을 잘 조절하여 일상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항암치료를 하자고 말하여 치료를 시작하고 싶다.

유방암을 치료하려면 자기 몸을 잘 관리하고 공부하는 똑똑한 환자, 교과서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최신 지견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근거 중심의 치료 전략을 구사할 줄 아는 의사, 이들이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 성공적인 치료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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