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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2. 유방암의 진단과 병기의 의미

이수현 슬기엄마 2011. 2. 27. 10:49

유방암의 진단과 병기의 의미

 

유방암이 진단되면 MRIPET-CT등 영상학적 검사를 통해 암의 크기(T), 림프절의 분포와 개수(N), 원격 장기로의 전이여부(M)에 따라 병기(TNM staging)를 결정하게 된다. 유방암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병기이고 병기에 따라 생존 그래프의 차이가 확실하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마음이 다급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병기 설정을 위한 추가 검사를 하는 것은 예후를 예측하고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별로 크지도 않고 증상도 없어요. 초음파 검사에서는 양성같다고 했는데, 제가 정말 암이 맞나요?”

 

유방암을 의심할만한 증상들이 있다. 유두가 함몰되거나 유두에서 진물이나 핏빛 분비물이 나올 때, 만져지는 멍울이 있다거나 유방 주위의 피부가 함몰되거나 붓고, 피부 색깔이 붉게 변하고 피부궤양이 생기면 유방암을 의심해야 한다. 정작 유방은 괜찮은데 겨드랑이에서 뭔가가 만져져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 유방은 표피 조직이기 때문에 주의깊게 들여다보거나 만져보다가 이상을 발견하여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항상 이런 가시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기 변화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육안적인 변화나 여타의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건강검진을 하다가 암을 발견하는 경우, 혹은 전신적으로 암이 진행하여 이미 수술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진단을 받기도 한다. 즉 특징적인 증상과 변화가 없더라도, 본인이 눈치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는 경우도 꽤 많다는 뜻이다. 크지 않고 증상도 없고 통증이 없어도 유방암일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이 되면 반드시 검사하고, 애매하면 조직검사로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모든 병에서 질병의 조기 진단이 모두 좋은 예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생존기간과 예후는 비슷한데 자주 검사해서 일찍 발견한 탓에 생존기간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질환들도 있다. 그러나 유방암은 조기 검진을 하여 병기가 낮은 상태에서 발견되면 수술하여 완치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생존률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킬 수 있는 병인만큼, 결과가 두려워서 검사를 미루는 것은 아주 미련한 행동이다.

 

일부 암을 제외하고 모든 암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방암은 초음파나 CT, MRI 등과 같은 영상검사를 하여 진단할 수 없고 반드시 의심되는 병변에서 유방 조직을 떼어내 암세포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암이라고 확진할 수 있다. 조직검사를 하여 얻은 조직에 약품을 처리하여 굳히고 녹이고 염색하는 등의 조작 과정에 48-76시간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염색을 하기도 하고, 조직이 불충분하여 판정을 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조직검사를 재시행하거나, 크기가 애매하면 2-3개월 후에 다시 조직검사를 해보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다. 환자들은 조직검사를 다시 하게 되는 상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진한 것이 아니냐, 시술을 잘못한 게 아니냐는 원망섞인 불만을 표한다. 환자들은 조직검사를 해놓고 결과가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고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유방암이라면 저는 몇기인가요?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예후, 즉 완치될 수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무병장수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병기(stage)이다. 4기가 아니라면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개 수술을 할 수 있다. 수술을 하고 나서 항암치료를 하기도 하고,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하는 항암-수술-항암치료의 샌드위치식 치료를 하는 등 순서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대개 완치 가능성을 가름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암이 진단된 환자에서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이 수술 가능성 여부이다.

그러나 사실 정확한 병기는 수술 후에 확정된다. 수술로 병이 있는 유방과 근처 림프절을 제거한 다음, 그 조직들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아서 각각의 조직에 암세포가 숨어있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여 병리학적 진단이 붙여지고 이에 따라 병기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간단한 세침흡입술이나 덜 침습적인 방법으로 조직검사를 하여 암이 진단이 될 수는 있으나 정확한 병기는 수술을 해야만 알 수 있다. 수술하기 전까지는 영상검사를 바탕으로 한 임상적 병기로 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수술을 하고 나면 처음에 설명들었던 병기와 차이가 나는 환자들이 있게 된다. 처음 진단이 되었을 때는  종양의 크기가 크고 림프절 전이도 많아 병기가 높았는데 수술 전 항암치료를 통해 종양의 크기를 줄이거나 림프절 전이 개수가 감소하게 되면 병기가 낮아질 수도 있다.

 

유방암의 생물학적 특징

 

모든 세포의 표면에는 다른 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수용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수용체 사이의 신호를 매개로 하여 세포들이 분화, 사멸하게 된다. 암은 세포 사이에 신호가 과다하게 발생하여, 혹은 같은 신호를 보내도 수용체가 과민하게 반응하여 세포의 분열과 성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세포가 증식하는 현상이다. 유방암 세포의 표면에는 에스트로젠 수용체, 프로제스테론 수용체, HER2 수용체가 존재하고 있는데 에스트로젠, 프로제스테론 수용체가 과발현되어 있는 것을 호르몬수용체 양성 그룹, HER2 수용체가 과발현 되어있는 것을 HER2 그룹, 이들 수용체가 모두 없는 것을 삼중음성그룹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들 그룹별로 질병의 진행과 전이되는 패턴에 차이가 있고, 치료약제의 선정, 예후 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유방암은 한가지 속성을 가진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정 수용체가 과발현되어 있다면 그 수용체를 차단하는 것이 암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에스트로젠 수용체나 프로제스테론 수용체가 과발현되어 있다면 세포 표면의 호르몬수용체를 직접 차단하는 약제를 쓰거나 에스트로젠으로 전환되게 하는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림으로써 에스트로젠 경로를 막아 신호등의 빨간 불을 끌 수 있다. 예전에는 HER2 수용체의 과발현 그 자체가 나쁜 예후인자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수용체에 결합하여 HER2 수용체의 활성화를 억제시킬 수 있는 Trastuzumab(Herceptin)이라는 약이 나오자, 나쁜 예후인자로서의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생존률을 향상시키게 된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Herceptin을 쓴 HER2 수용체 양성 그룹의 환자들이 HER2 수용체 음성그룹에 비해 오히려 예후가 좋기도 하다는 논의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요즘 항암제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환자의 암세포 표면에 타겟이 될만한 수용체를 가지고 있을 때 해당 molecular pathway를 차단하는 약제를 개발하는 것이고 유방암은 이런 연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영역이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들의 세포는 비교적 얌전한 편이다. 수술을 하고 나면 재발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다른 암종은 5년이 지나면 재발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일단 완치판정을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이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10, 15년이 지나도 재발할수 있다. 재발해도 병으로 인한 증상이 별로 없고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항암제를 쓰지않고 항호르몬제를 쓰면서 2-3년씩 잘 견딘다. 항암제를 쓰지 않지만 병도 컨트롤 되고 삶의 질도 좋고 누가봐도 재발된 4기 유방암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게 활동적으로 사는 분들이 많다.

반면 삼중음성유방암 그룹에 속하는 경우,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1기로 수술하고 조기 발견에 안도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보조항암치료를 마친 지 불과 3-4개월도 되지 않아 뇌전이가 발견된다든지, 심지어 보조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재발이 발견되어 의사와 환자 모두 충격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머리가 가끔 아프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찍어본 MRI에서 다발성 전이와 뇌막전이가 발견되면 치료한 의사도 할말이 없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병이 나빠진다. 삼중음성 유방암이기존의 항암제로 전혀 치료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아직 타겟이 없다.

병의 코스는 한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여러 예후 인자들이 상호작용하고, 치료 과정중에 변화하면서 환자들의 투병과정이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 다만 유방암 환자는 아무리 상태가 나빠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대개의 4기 암환자들은 중환자실 치료를 잘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방암 환자들은 생명력은 좀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젊어서 그럴까?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 유방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방암 발생 평균 연령이 60세 전후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의 평균 발병 연령은 10년 이상이 젊은 40대 후반이니, 유방이 치밀해서 단순유방촬영에서 유방암이 숨겨져 보이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젊은 여성들의 유방암 선별검사로 단순유방촬영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초음파 검사를 병행했을 때 선별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왜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은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명확한 대답이 제시된 것은 없다. 더불어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젊은 유방암 환자들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사회적인 공식적, 비공식적 시스템이 더욱 필요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