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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엄마는 종지엄마

 

내가 의과대학을 입학하던 2000년 슬기는 만세살이 안된 꼬맹이었다.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오물오물 말하던 귀여운 슬기가 올해 중학생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란 그야말로 productive 하게 쑥쑥 자라고 발전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때묻고 집중력없고 퇴보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경이로운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난 작년부터 슬기에게 여러 모로 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간장종지엄마가 된 것이었다. 슬기는 급격히 성장하여 인간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주제로 나와 대등한 대화를 나누거나 때론 나보다 사건의 정곡을 찌르는 분석력을 보여주는 등 사고의 깊이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나는 표피적으로 이해하고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절지동물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대별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얄팍한 나의 지적 및 지식 수준을 전문의 시험 공부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어서 그래라며 둘러대곤 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다른 생각할 거 없이 오로지 시험만을 준비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상식도 좀 떨어지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모르더라도, 심지어 감정까지 약간 메말라지더라도 이해해달라고 변명했었다.

전문의 시험이 끝나고 나자 더 이상 변명할 거리가 없어졌다. 그렇지만 난 전문의가 되고 나면 나의 전공과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축적된 안정된 지식체계를 가지고 학문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되며, 그리하여 세상을 향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한창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관심이 많고 이것 저것 관심이 많은 슬기는 궁금한게 있으면 핸드폰, 인터넷을 이용해서 그때그때 궁금함을 푸는 편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뭔가 모르는게 생기면 백과사전을 찾아보곤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google이나 naver 등의 검색엔진을 이용한다. 그래서 난 슬기가 그렇게 알아낸 인터넷 정보들에 대해 사물과 사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로막고 인간의 성찰적 능력을 저해하는, 얇고 넓은 창호지 지식이라며 비아냥댔다. 그러자 즉각적인 슬기의 반격. 그렇게 성찰적 지식을 강조하는 엄마는 얇으면서도 좁은 간장종지지식의 소유자라며 반박한 것이다. 간장종지 자체는 얇고 좁은 지식을 상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완전히 뒤집어 지면서 엎어지는 불안정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나에게 완전한 자기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비꼬는 개념이었다. 그리하여 슬기는 핸드폰에 나를 종지엄마라고 입력하며 복수를 하고 있다.

 

딸한테 이런 복수를 당하고 보니 분노보다는 창피하고, 정말 내가 간장종지 지식의 보유자가 아닌가 하는 위축감이 든다. 대학원을 다니며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세미나 등을 하며 사고의 내용과 범위를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며 젊음을 보냈건만, 2000년 이후로 나의 그런 능력은 많이 쇠퇴한 것이 사실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쇠퇴하는 정도를 넘어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협함에 물들고 사고의 폭이 좁아지며 인간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지고 정서도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외골수 같은 인간 유형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는 내 개인의 정서 함양 미달의 문제가 아니라 의대를 졸업한다는 것, 의사가 된다는 것을 포괄하는 시스템의 결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개인의 능력부족을 시스템으로 돌리려 는 그런 남 탓하기의 변명은 아니다) 슬기는 의사가 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변했다며. 사람이 이렇게 되는 거라면 의사를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비아냥거린다. 아마 슬기가 대단한 본질을 꿰뚫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치며 생활해왔는지를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또 의대 졸업 성적은 그가 어떻게 의과대학 생활을 했고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를 많은 부분 설명해 줄 수 있다. 의대를 졸업한 후 어떤 과를 하고 어떤 지위를 갖는 의사가 되었는지도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즉 의사라는 직업이 쉽게 유형화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의사는 사고가 편협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잘 모른 채, 남 배려할 줄 모르며 낯선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쉽다. 환자를 본다면서도 진짜 세상과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에 마음깊이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남과 협동하여 일할줄 모른다. 한마디로 insight가 없는 존재가 되기 쉬운 상태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이런 의사를 폄하하는 문장에 발끈하실 분은 없으시라고 믿는다. 결국 의사가 된 나도 내 수준이 이런 평균에서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요지는 의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의사되기의 과정을 철학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확산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로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은 900, 얼마나 똑똑해야 의대 예과생이 될 수 있는걸까? 그것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일반 대학 4, 대학원 혹은 회사 생활을 하다가, 1-2년간의 입시공부를 하여 의전원에 입학하고 있다. 많은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고 그들은 의전원에 입학한다. 그렇게 똑똑하고 양질의 인력들이 의대에 입학하였지만 정작 의과대학에서, 병원 실습을 하며 예전보다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가? 좋은 의사 만들기 프로젝트는 2+4인지 4+4인지 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고 의사를 양성하는 사람들의 철학, 의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병동에는 실습을 시작한 본과 3학년 학생들이 어슬렁거리기 시작하고, 방학이라며 쉬었던 각종 컨퍼런스들이 봄과 함께 시작됨을 알리는 포스터들로 게시판 가득이다. 내가 학생 실습을 하던 시절, 뭐라도 더 하나 건져보겠다며 질문하고 병동에 얼쩡거리며 두근반 세근반 설레이는 심정으로 교수님 회진을 준비하곤 했었는데, 오늘 나는 그들에게 어떤 선배 의사로 비춰지고 있을까? 마무리하지 못한 논문과 씨름하느라 부족한 수면, 멍해보이는 눈빛, 부시시한 머리, 무릎이 튀어나온 허름한 바지, 꼬질꼬질한 가운시킨 일은 제 때 제대로 해내라는 교수님들 독촉도 점점 더 무거워지는 fellow 2년차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생과 레지던트에게 정말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런 나에게 그들은 정말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고백한다. 그들이 이렇게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좋은 교육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난 정말 종지엄마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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