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펠로우 탐구생활

이수현 슬기엄마 2011. 2. 27. 11:54

평범한 펠로우에게 박수를!

 

훌륭한 펠로우는 새벽일찍 일어나 환자파악 마쳐요. 주치의 없어도 회진도는데 전혀 문제 없어요. 아침에 보호자 warning도 다 해놓아 교수님 회진 도실 때 보호자들이 군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게 만들어요. 평범한 펠로우는 밤새 뭔가 꼬물꼬물 하다가 늦잠자서 아침이면 허둥지둥이에요. 환자 파악한 것도 다 엉켜서 기억이 잘 안나요. 주치의들 자리 비우면 회진때 어물어물 교수님께 노티도 제대로 못해요. 상태 나빠진 환자 보호자들이 회진때 엄청 complain 해요. 교수님 회진 도실 때 기분 나빠져요.

훌륭한 펠로우는 교수님이 스터디 주시면 약속 날짜 어김없이 논문 다 써요. 교수님 코멘트 하시면 바로 회신해서 response 보여드려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좋아하세요. 항상 당당한 표정으로, 다른 더 나은 주제로 할만한 스터디 없나 교수님들과 상의해요. 평범한 펠로우는 과제 주시면  제때 해낸 적이 없어요. 논문도 교수님이랑 약속한 시간까지 쓴 적이 없어요. 교수님 코멘트 해주셔도 뭉게고 대답 못해요. 병원에서 교수님 뵈면 멀리서부터 피하게 되요.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야 하는 교수님들이 많아져서 병원을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꼼짝 못해요.

훌륭한 펠로우는 병원 시스템도 잘 알고 후배 레지던트들 다루는 법도 잘 알아요. 언제 검체 접수되고 언제 결과 나오는지, 레지던트들도 요령있게 닥달해서 필요한 결과를 앉아서 보고받고 자기는 논문읽으며 시간 아껴요. 평범한 펠로우는 레지던트들한테 일 제대로 못시키고 결국 자기가 땀흘리며 돌아다니며 결과 확인하다가 지쳐요. 환자 설명도 직접 다 하다보니 항상 시간이 없어요. 병동에서 힘 다 빼고 방으로 돌아오면 녹초되어 최신 지견 업데이트도 못하고 논문도 제대로 못 읽어요. 악순환이에요.

훌륭한 펠로우는 학회 참석 일정도 미리 챙기고 향후 스터디 계획도 미리미리 잘 세워서 시간을 짜임새있게 잘 써요. 매사 자신감 만빵이에요. 평범한 펠로우는 허둥지둥 살면서 학회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남들 다가는 학회 못 쫒아가요. 겨우 학회장 가서도 졸아요.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병원와서 교수님이 질문하시면 대답도 못해요. 항상 혼나면서 눈치보고 자신감 완전 바닥이에요.

 

L양에게

나는 이제 평범한 펠로우 2년차 생활에 접어들었다. 아직 아마추어라서 그럴까? 하는 일이 매번 새롭고 낯설다. 내가 잘 모르는 낯선 일이 생기면 당황하고 허둥지둥이야. 작은 일에 걸려 넘어져도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툭툭 털고 있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애 쓰는 나를 위해 씩 웃어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보다는, 항상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오히려 펠로우 1년차 때는 나름 새로운 의욕도 있고, 의욕에 비해 따라주지 못하는 나의 실력에 대해서도 교수님들이 어느 정도는 관용적으로 대해주셨던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교수님들의 관용에 의지할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독립적인 종양내과 의사로 자리잡고 기능할 수 있을지를 타진해 봐야할 때가 되었다는 깨달음이 오니, 만사가 참 부끄럽고 위축되고 나의 형편없음이 자조적으로 크게 다가온다.

듣자하니 L양도 요즘 위기라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리네. 평범한 펠로우 1년차는 파트가 바뀌면 매번 당황스러워. NCCN guideline이라도 다시 한번 리뷰하고 파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환자 파악하고, 주치의들 문제 생기면 막고, 교수님들이 시킨 다른 일도 좀 하고, 그렇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난 도대체 이 파트에서 배운게 뭔지, 공부한게 뭔지, 알게된게 뭔지 되새김질 해 볼틈도 없이 다음 파트로 텀이 바뀌게 되지.

주위의 훌륭한 펠로우들은 정말 얄밉게도 효율적으로 시간 잘 쓰고, 레지던트 애들도 닥달을 잘 해서 내가 해야할 일과 움직여야 할 동선을 최소화하지. 그들은 대단해. 그들은 나처럼 인생을 끌려가며 살지 않아. 정말 용의주도하지.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 난 정말 한없이 위축되고 바보같아.

그런데 L, L양이 수많이 내과의 subspecial 중에 혈액종양내과를 선택했는지 그 첫 마음을 생각해봐. 그리고 4년차 치프때는 신나고 좋았잖아? 그냥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남과 나를 비교해서 종양내과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잖아? 그 마음을 떠올려봐. 사실 훌륭한 펠로우가 논문 몇 개 더 쓰고, 용의주도하게 병원 생활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게 L양처럼 따듯한 마음으로 환자보고, 레지던트들에게도 여러 모로 좋은 선배가 되어주는 거야. 내가 예전에 본 L양은 그런 사람이었어. 겸손하고 자기 할일 열심히 하고 착하고 똑똑한 L양이 지금 힘들어한다니 나도 속상하네.

종양내과의사는 L양처럼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기본을 다하기 위해 성실하게 애쓰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야.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좀 부실해도, 동기들에 비해 나의 출발이 좀 늦어보여도, 선생님들 마음에 영 안드는 펠로우로 보이는 것 같아도, The show must go on이야. 힘내라구.

 

내가 생각하는 학문의 전제조건은 세가지인데 첫째 자기 내부에서 나오는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야.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 이런 사람이 그리 많을거라고는 생각안해. 둘째는 스승님(mentor)이야. 내가 귀감으로 삼고 본받고, 모시고 싶은, 그래서 평생 그로부터 배움을 얻는 스승님을 만나는 일이야 말로 정말 멋지고도 희열에 찬 일이지. 하지만 우리 모두 알 듯 쉽지 않아. 그런 스승님을 만난다는 건. 셋째, 같이 공부하는 공동체 집단, 지적 연대의식을 함께 하는 동료가 필요한 것 같아.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코멘트해 줄 수 있는, 내가 답답해 하는 주제에 대해 같이 논의해줄 수 있는 비슷한 학문 공동체 집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세가지 중 한가지만 자기 내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솔직히 부끄럽지만 첫째에 해당하는 뜨거운 열정이 나에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선택한 길이면서도 과연 무한극한으로 열정적인가! 아마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야. 그렇다면 스승님과 동료가 내 학문의 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겠네. 나도 L양에게 그런 동료 중의 한명이 되고 싶어. 그러니 우리 서로를 의지하며 쇼를 무사히 마치자구. 내 수준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만한 실력도 없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입장이나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으로 깊이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라구. 우리 모두 평번한 펠로우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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