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Long vacation 견디기 - 3

이수현 슬기엄마 2012. 8. 7. 23:06

 

내가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무래도 인생은 스스로 브라보를 외칠 수 밖에 없나봅니다.

우린 누군가에게서 내 마음에 흡족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만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눈 앞에 할 일이 많아도

마음이 안 잡히면 허둥대고 집중이 안되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저도 요즘 좀 그래요.

제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나의 과거는

아직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 대학교 다닐 때는 사진에 미쳐서 학과공부는 손도 안대고

전국을 쏘다니며 사진에 올인했었어요.

멋진 보도사진을 찍는, 그래서 역사와 사회를 기록하는 찍사가 되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던 시절이었지요. 긴 방학 동안 몇일찍 집을 떠나 필름 가득담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때 엄마 아빠한테 혼도 많이 나고 집에서 쫓겨날 뻔 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폐광 위기에 몰린 태백산 광산촌에 가서 광부아저씨들을 취재하고

우르과이 라운드로 폐업 직전의 농촌을 찾아다니며 위기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매일 새벽 4시 성남 일용노동시장을 찾아 일용직 노동자의 현실을 취재하기도 하고

4.19 마라톤을 뛰는 대학축제때 남들보다 세배이상 뛰어다니며 마라톤 대회를 찍기도 하고

그렇게 젊음을 카메라와 함께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접고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거의 인연과 나를 단절시키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직업을 선택했던 시절.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일주일에 세번의 수업과 세번의 과외 세미나.

명절에도 쉬지않고 학교에 나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생활.

그러나 공부라는게 몰아쳐서 순간에 열심히 한다고 내면에 쌓이는게 아니었습니다.

끝도 없었어요. 나의 무식은.

매 수업과 세미나에서 나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해 방황했습니다. 내가 과연 사회학을 공부할 사람인가. 이렇게 통찰력과 사회학적 상상력이 부재하여 어찌 학문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카메라를 던지고 책을 잡았지만

사람의 습속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5년간의 대학원 생활은 내 사상의 결핍과 실천적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래보다 7-8년 많은 나이로 의과대학에 입학.

정말 머리에 들어가는 거 하나도 없었어요. 또 막막하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전 대학시절의 친구, 대학원 시절의 친구와는 또 담을 쌓았습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험을 통과하기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하고 수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낙제를 면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해서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매학년을 통과하기를 4년. 그렇게 의사가 되고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거쳐 종양내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레지던트 시절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땐 미래를 계획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당장 내 눈앞의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요.

내 미래를 조망하기에 레지던트의 삶은 여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가 중요했어요.

돌이켜보면 온 병원을 내것처럼 휘젓고 다니며 중환보는 내과레지던트의 삶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환자 보느라 당직을 서며 온 밤을 꼴닥 새고도 다음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내 환자를 위해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어야 했던 시절, 믿을 수 없겠지만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나의 과거, 내가 만났던 세상은 아직도 조각조각 연결되지 않고 흩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어

또 다시 나의 과거와 단절된 채 현실을 살아갑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나의 입장, 나의 속내를 쉽게 들어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단절된 세상 속에서 나만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당장 내 눈앞의 환자에게만큼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사로서의 당연한 직업적 명제가 저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내일 전쟁이 나도 나는 오늘 회진을 돌고 외래를 보는게 일인 의사입니다. 전쟁이 나면 병원을 떠나서도 안되고 환자가 있는 그 순간은 항상 그 곁에 있어야 하는게 의사입니다. 제가 오랜 우회로를 거쳐 뒤늦게 의사가 되었지만 지금 제가 의사라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매 삶의 순간을 열심히 살았지만

아직 그 삶들을 관통하는 나의 철학은 부재하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지만 그 핸들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른채 비틀대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과거의 순간을 스스로 칭찬해주고

지금은 비틀거리지만 다시 제대로 된 노선을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한 위로는 내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저는 어디서 힘을 얻어야 할까요?

 

절망의 순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내서 용감하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면

남일 같지 않습니다.

지금 내 앞의 환자가 겪고 있는 삶의 위기. 자기 존재의 전부를 걸고 투쟁하고 있는 지금 이시간,

그것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뚜기처럼 일어서서 다시 시작하는 환자들을 볼 때, 한 인간으로서 가르침을 얻습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그 누구도 막 살고 있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생활의 현장에서

아픈 몸을 추스리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묵묵히 해내기 위해

매순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요.

그래서 통상적인 질문과 대답이 왔다갔다 하는 그 순간에도

저는 환자들의 마음에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위태위태함을 가끔 느낍니다.

치료받느라 힘드시죠?

이 말 한마디에 환자는 바로 눈물 한방울 뚝.

난 진료실에 준비해둔 크리넥스 화장지를 뽑아드립니다.

서둘러 눈물을 닦고 애써 웃으며 말합니다.

괜찮아요. 선생님.

 

어쩌면 죽을 때까지

지금의 단절된 시간과 삶들이 연결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때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 줍시다.

아쉬운 시간도 많지만

최소한 지금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라고.

그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제가 많은 걸 배우고 결심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주세요.

저에게 가족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진료실에서 만나는 여러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