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빙그레 웃음

이수현 슬기엄마 2012. 8. 29. 20:45

 

가끔 유방암 클리닉 외래에서 웃음이 터집니다.

암치료 받으면서 웃을 일이 있냐구요? 그럼요.

삶은 순간이에요.

그 찰나가 즐겁고 웃음나는 순간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원래 탁솔이나 탁소텔이 우울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약을 맞으면

여기 저기 몸이 아프고 서너번 주사를 맞으면 몸이 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몸도 무거워요

그리고 항암제를 맞고 1주일 정도 지나면 무기력감도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울하기 쉽상이에요.

 

저 사실 외래 진료실 문 열고 들어오시는 순간, 느낄 수 있어요.

'아, 우리 환자가 마음이 좀 힘드시구나. 우울감이 온 것 같다.'

그래도

'우울하세요?' 쉽게 묻지는 못합니다. 그건 왠지 환자의 프라이버시 같아서요.

그래도 제가 '우울하세요?' 이렇게 묻는다는 건,

제 마음 속으로 꽤 걱정이 될 때 입밖으로 내서 질문을 하는 겁니다.

제가 그 질문을 던지면 환자들이 참고 있던 눈물을 뚝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우리 진료방에서는 크리넥스 화장지도 준비되어 있죠. 많이 울고 가시니까요)

 

그런 우울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빵터지는 유머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환자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저는 처방을 합니다.

'돈 좀 쓰세요. 아끼지 말고 팍팍'

환자가 울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팍팍이라는 말에.

'평소에 못가본 럭셔리한 레스토랑도 가서 미친 척 비싼 스테이크도 사 드시구요,

백화점 가서 비싼 브랜드로 옷도 한벌 사세요.

화장품도 좋은 걸로 하나 사서 피부 관리 좀 하시구요.

한번에 오만원 넘는 마사지도 받아보세요.

돈 싸 짊어지고 갈건가요.

좀 없어도 그냥 좀 쓰세요.'

 

남편에게 당부합니다.

'나중에 이사갈 때 냉장고에 갇혀 버림당하지 않을려면

지금 좀 투자하세요.

항암치료 매 싸이클 지날 때마다 목걸이 귀걸이 같은거 좋은 놈으로 하나 선물하세요.

마음 필요없어요. 물질이 최고에요.'

 

환자들은 냉장고에 버릴 거라는 거, 물질이 최고라는 말에 빙그레 웃음 짓습니다.

그런 말 하는 거, 그런 마음 갖는거 너무 속물적이라 우리가 억누르고 사는 마음입니다.

너무 없어보이는 거, 남에게 아쉬운 말 하는 거 그렇게 안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게 우리 자존심입니다.

 

치료받으며 힘든 몸과 마음

자존심마저 잃지 않으려 애쓰는 환자들.

그 마음 미리 헤아려

그냥 좀 뜻 좀 받아주고

그냥 좀 울라고 놔두고

그냥 좀 씩씩하지 않은 모습 보여도 못 본척하고

그냥 생색내지 말고 방청소 설겆이 하면서 일도 좀 덜어주고

그렇게 드러나지 않게 환자 마음을 배려해 줄 때

환자가 빙그레 웃음지으며 힘내서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힘들어 하는 환자들이 많아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많이 쓰여서 초저녁부터 녹초가 됩니다.

의사도 감정노동이 많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