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밤이면 밤마다...

이수현 슬기엄마 2012. 9. 3. 21:48

 

 

제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수첩

외래를 보고 나면 그날 해결이 제대로 안된 환자들의 이름과 병원번호를 씁니다.

환자 전화번호를 써놓기도 합니다.

 

제가 내일이나 모레 전화드릴께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당일 치료 결정을 하지 못한 채 환자를 보낼 때도 가끔 있습니다.

 

외래를 보고 방으로 돌아오면

수첩을 열고

다시 환자 리뷰를 합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면서 논문도 좀 찾아보고

솔직히

혼자 생각으로 해결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의 문제는

비단 유방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방 외과나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과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케이스로 나타납니다. 많은 과가 연관된 문제로 말이죠.

우리 암병원의 진료 철학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다학제 진료의 활성화'를 모토로 내 걸었지만

실상 다학제 진료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하거니와

모든 환자의 케이스를 다학제 진료위원회에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여하간

저는

외래 진료가 있는 월화수목요일 밤은

그날 해결이 잘 안된 환자들의 사례를 모아 정리하여

다른 과 선생님들께 사연을 적어 무수히 메일을 보냅니다.

같은 환자도 이과 저과 선생님들께 의견을 여쭤봅니다.

보통 서너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다른 과 선생님들 중에는 안면이 있어서 내 편의를 좀 봐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선생님도 계시지만

전혀 모르고 저보다 연배도 훨씬 높으시고 감히 인사만 겨우 하고 지날 정도의 높은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감동스럽게도

대개의 선생님들이 24시간 안에 답장을 주십니다.

학회면 학회라고 답신해주십니다.

수술 스케줄도 손수 정해주시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더 나은 묘안을 제시해주시기도 합니다.

선생님들의 답신 메일을 받으면

논문 채택되었다는 알림 메일만큼이나 반갑습니다.

 

그래,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신이 난 저는 

다음 날 환자에게, 담당 간호사에게 연락하여

새로운 계획을 설명하고 우리가 함께 실행해야할 새로운 미션을 설명드립니다.

전화로 설명드리기도 하고

제 외래를 다시 잡아 설명드리기도 합니다.

제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에 대해 우리 환자들이 잘 이해해주고 계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이 성의껏 열심히 진료하려고 그러시는구나

그렇게 이해해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무서운 외과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흔쾌히 오케이 답신을 보내주시고 수술 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 병원이 좀더 체계적이고

협진과 다학제 진료가 잘 이루어지는 병원이 되면 좋겠지만

매일 밤 제 고민에 동참하여

환자 진료방침에 관해 결정과정을 함께 해 주시는 선생님들의 메일을 받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병원의 시스템 개선을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써야 겠지만

하나라도 제가 발로 뛰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