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물 안 개구리

이수현 슬기엄마 2012. 9. 4. 23:28

 

 

오늘 호스피스 완화학회 내 보험위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학회의 보험위원입니다.

근사하네요. 명칭이...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 하에서는

완화의료 서비스나 호스피스 서비스가

정식 수가가 발생하지 않는 서비스 항목입니다.

그래서 개별 병원의 형편에 따라 자원봉사적인 측면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병원도 호스피스 팀이 있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말 국내 최고의 호스피스 팀이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환자는 내는 돈 없고 국가도 병원도 지원해주는 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1년에 2번하는 자선바자회가 우리 호스피스 수입의 전부입니다.

병원 예산도 거의 책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 암센터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해 주신것으로 들었습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병원 입장에서도 이런 분야는

수입이 창출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별로 투자하고 싶은 분야가 아닐 겁니다.

심지어 생애 마지막 시기에서는 영양제도 줄이고 검사도 삼가하면서

임종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에게서 어떤 의료비용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임종 준비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개별 병원 차원에서 호스피스를 운영한다는 것은 파산의 지름길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병원이란 자꾸 검사하고 이약 저약 많이 써야 돈을 버는 기관이니 말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의사와 병원은 성직자와 종교기관이 아니니까요)

 

대개는 천주교에서 종교적인 차원에서 호스피스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지만

비단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호스피스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개별 병원 입장에서 활성화하기 어렵다면

건강 및 의료정책에 대한 국가의 철학적 입장이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해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는 다른 개념입니다.

 

환자는 완치되지 않는 단계의 암을 진단받는 것 자체가 큰 충격입니다.

의사는 그런 충격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정신없이 검사 스케줄 돌리고 항암치료 하기 바쁩니다.

환자의 마음 속에는 오만가지 근심걱정이 지나갑니다.

정신적

심리적

가족적

경제적

종교적

여러 차원에서 생각과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잘 해결할 수 있게 직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완화의료 서비스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완화의료라는 것은 표준치료를 잘 받고 환자의 힘을 북돋와주는 과정입니다. 일종의 힘주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중요한 서비스를 함께 제공했을 때 표준치료만 받는 환자에 비해 환자의 삶의 질, 우울감 등이 호전될 뿐만 아니라 생존기간도 향상시킨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보험체계 내에서는 완화의료 서비스에 대한 의료 비용 부분은 아예 책정조차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라,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수가를 발생시켜 돈을 지불하는 정식 서비스로 만드려는 노력이 진행중입니다.

 

여러 병원, 여러 지역에서 모인 선생님들과 함께 오늘 모임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암환자가 몰리는 큰 병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갖는 내 시각의 한계.

암환자가 득시글 득시글 많지 않아도

성실히, 소박하게 환자를 진료하며 일하고 있는 현실의 목소리가

말하고 있는 또다른 현실은 어떤지 

제가 어느 새 그런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

그 우물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못난 개구리입니다.

 

9월 10월에는 학회도 많고 발표도 많은데

좀 더 제 시각을 겸손하게,

그리고 현실에 천착하는 시각을 갖도록 입장을 재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역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남으로부터 배우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