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U 날짜 없는 퇴원 요약지

 

인턴 생활 4달만에 외부 병원으로 파견을 나왔다. 낡은 병동의 답답한 공기, 게다가 일찍 찾아온 여름의 텁텁함에 질릴 무렵이라 파견이 반갑다. 본원을 벗어난다는 해방감에다가 업무의 과중함도 비교적 덜하기에 마음은 가볍지만, 생소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는 불편함도 많다.

나는 낯선 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병실에는 육중한 침대 대신 고물고물한 아기들이 담겨있는 바구니가 가득하다. 폐렴이 의심되는 아기들, 설사하는 아기들, 황달치료 중인 아기들이 구역별로 놓여 있다
.

내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이니, 대략 7년 전에 나는 이런 갓난아이를 데리고 씨름하며 여름을 보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 아이들이 '환아'라기보다는 내 아이들처럼 친근하게같이 파견 온 총각 인턴 선생님보다는 조금 더느껴지는 것도 당연. 내가 아이를 안고 달래며 청진을 하는 모습을 보던 한 간호사는 나의 남다른 익숙함에 내 과거력을 대번에 알아차린다
.

바구니 머리맡의 이름표는 아이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진단명, 간단한 과거력, 대소변상태, 그리고 이 아이가 어떤 경로로 이 병원에 왔는지까지. 그래서 몇몇 아이들이 '동방'이나 '홀트'와 같은 사회복지기관에서 온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

저렇게 바구니 안에 누워 있으면 같은 이불을 덮고 같은 기저귀를 차고 비슷한 care를 받지만, 정작 저 녀석들이 커가면서 받을 사랑과 관심이 남들만 못하면 어쩌나 싶어 안쓰럽다
.

기관에서 온 아이 중에 태어난 지 5개월이 넘었건만 내내 incubator care를 받는 아이가 있다. 그동안 TPN으로 겨우 3kg를 넘긴, cleft palate를 비롯해 multiple anomaly를 가진 아이인데, 어제는 한 차례 seizure를 했다. 그 아이의 예쁘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에는 항상 눈물이 말라붙어 있다
.

어떤 연유에서든 이땅에 태어난 생명이라면 마땅히 그 생명권이 존중되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도움이 제공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처럼 '가족의 보험적 성격'이 강한 사회에서 가족 없이 삶을 출발하는 아이들이 넘어야 할 관문은 첩첩산중일 수밖에 없으리라
.

'
장애가 있다 해도, 그래서 'normalize'되지 않는다 해도 그 나름으로 삶의 질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논하기에 우리 사회는 부족함이 많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래서 나는 아직 여물지 않은 녀석의 입술을 보며 '수술해서 cleft lip & palate를 고친다 해도, 다음에는 어디를 어떻게 언제 손을 대서 너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겠니?', '비용은 누가 지불할 것인지, 그렇게 대가를 치르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비용효과적인 야비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

한 입양기관에서 일하는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이 입양할 아이를 선택할 때는 깜깜한 밤중에 불을 켜지 않고 누가 누군지 모르게 해서 아이를 데려가도록 권한다는. 입양이 결정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어떤 기준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고, 그 기준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

오늘은 기관에서 온 두 녀석이 한꺼번에 퇴원했다. 그들의 퇴원요약지를 작성하는데, follow up 날짜는 공란으로 남았다. 다시는 그들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졌기 때문이 아니었기에, 그 공란처럼 내 마음도 허전했다.

 

다른 카테고리의 글 목록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