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2)

이수현 슬기엄마 2011. 2. 27. 21:14

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2)

 

성주의 진단명이 바뀌어 있었다. Graft versus host disease.

사실 hematuria가 있을 때부터, 그래서 동기 소아과 인턴이 q2h bladder irrigation을 한다고 투덜거릴 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서 성주에게 찾아갈 수가 없었다. 병동에 가서도 차트만 보았는데, 요 며칠동안 mild fever, abdominal pain, skin rash도 재발하고 있었다
.

오늘은 무거운 마음으로 성주를 찾아가 본다. 최근 1년 동안 성주를 돌보아 주고 계신 할머니는 성주가 있는 보호소 소장의 친구분이시다. 당신 집에서 성주를 돌보시고 이식 기간 동안 무균실에서도 내내 성주 곁에 계신 분이다. 바로 옆 병동에 입원한 당신의 친구에게 한번 가볼 틈도 없이 성주 곁에만 계셔주신다. Sibling donor를 찾기 위해 지난 6월 한 방송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성주는 엄마, 아빠 찾아도 할머니랑 살 거라고 했었다
.

그랬던 성주가 최근 며칠 동안 심하게 앓고 밤잠을 설치면서 엄마아빠를 부른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아파하다가 방금 전에 겨우 잠이 들었다는 성주는 내가 손을 잡아주자 나지막이 엄마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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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이비 천주교 신자라서 기도를 한 지 오래되었지만, 인턴이 되어 병원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도 모르게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된다. 모든 검사와 치료를 마친 상태에서 성주의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이 시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 어쩌면절대적으로기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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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의 주치의이신 유철주 선생님을 비롯해서 소아병동 간호사들, 그리고 혈소판 공급을 위해 백방으로 지원자들을 모집하는 병원 원목실의 간사님, 성주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성주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은 소량의 죽을 먹으며 TPN을 병행하고 있지만, 예전에 성주가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다른 환자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입맛이 당길 만한 음식이 있으면 성주를 꼭 챙겨주어 성주 침대에는 늘 먹을 것이 풍요로웠다. 비디오 테이프, 장난감 로봇, 레고 블록, 만들기 세트 등은 그들이 성주에게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애정 표현이다
.

과연 내가 성주에게 갖는 마음이 empathy인지 sympathy인지 되물어 본다. 그들의 일상적인 사랑 실천에 비해 나는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미련을 갖는 sympathy만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환자와 객관적 거리 두기라는 핑계로 환자에 대한 empathy를 구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의사는 아닐까
?

어떤 인연에서든 성주에게 관심을 갖고 회복을 기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녀석 때문에 일이 많아져 힘든 의사들의 불평을 우연히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마음이 상했다. 물론 나 또한 어떤 환자에게 나를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그를 향해 의미 없이 불평을 내뱉는 범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

환자의 삶과 그 이면의 context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말 안 듣는, 혹은 짜증이 많은 환자를 두고그 환자 정말 malig하다고 고개를 내젓기보다는, 환자의 compliance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이 적절한가 고민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어떻게 체화할 수 있을지
….

친부모로부터, 또 양부모로부터 두번 외면당한 성주의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우리 병원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라는 약으로 지금의 acute GVHD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앞으로의 병원생활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목록에환자에 대한 empathy’를 추가한다
.

1
년 가까이 데리고 키운 아이를 다시 파양하기까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함부로 재단하거나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성주가 친부모와 양부모로부터 두 번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양육과정이 여러 차례 급변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주된 부양자가 자꾸 바뀌다보니 생기는 당연한 문제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