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엽기적인 여자 인턴방

이수현 슬기엄마 2011. 2. 27. 21:17

엽기적인 여자 인턴방

 

우리 병원 36명의 여자 인턴은 방 2개에 모여 같이산다’. 새벽이 되면 울려대는 call과 각자 맞춰 놓은 알람소리 때문에 비슷한 시간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같은 식빵에 같은 쨈을 발라먹고 같은 우유를 마신다. 음료수랑 야식용 라면도 같은 걸 먹는다. 잘 때도 모두들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잔다. 공동세면장의 비누도 같은 걸 쓴다. 큰 방에 한 대 있는 TV도 모두 둘러앉아 같이 본다. 누군가 큰 아이스크림을 사오거나 군것질 거리가 생기면 모두 함께 먹는다. 정말 정겨울 것 같지 않은가? 간혹 나는우리가 싸는 똥의 성분도 똑같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새벽 1∼2시까지 일해야 하는 파트, 새벽 4시면 일어나야 하는 파트 등 일하는 시간이 다르다보니 인턴방은 거의 24시간 불이 켜있기 십상이다. 식사시간을 맞춰 밥을 먹기는 어렵고, 짬이 나면 컵라면을 먹거나 인스턴트 밥을 먹는다. 그러나 어디 call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던가? 테이블에는 항상 누군가 먹다 말고 뛰쳐나가 젓가락이 꽂혀있는 밥그릇이 뒹굴기 마련이다. 차트와 밥그릇과 수건들이 나란히 놓여있어도 이제 별로 어색하지 않다
.

여자 인턴방은 2개지만, 남자 인턴방은 잠잘 수 있는 방만 4개에다 휴게실도 따로 있다. 남자 인턴은 68. 공간배치는 워낙 예전부터 유지되어 오던 것이라 쉽게 바꿀 수 없는 문제인가 보다. 지저분한 것은 남녀 방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침대와 사물함 자리 말고는 테이블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밖에 없는 곳에 36명의 성인 여성이 살려니 지저분함과 일상적인 불편함은 말도 못한다. 때로는 책상에 엎드려 자야 하는 사태도 발생하니, 공부할 공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사치에 해당된다
.

여의사 숙소는 별도의 문이 있어 남자 의사들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연이라도 한번 보게 된다면, 아마 여자에 대한 모든 환상이 완전히 깨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차마 내 입으로 우리 방의 현실을 더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

모두에게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라 표정관리도 중요하다. 혼자 분을 삭히고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릴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 얘기도 의도치 않게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소문의 온상이 되기도 쉽다. 입심 좋은 동기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상급 전공의가 있으면 나는 내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매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게 된다. 물론 내 말도 누군가의 입을 타고 밖으로 새어나가기 쉽다. 의사 사회란 (긍정적으로는) 동료간의 평가와 평판이, (부정적으로는) 소문이 중요한 사회라기에,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부터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

우리는 동기, 기쁜 일도 함께 슬픈 일도 함께!’라지만, 밀집된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더운 여름이라서 그런지 누군가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마음속에서하고 뭔가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표정관리도 더 힘들다. 스스로의 똘레랑스 역치가 낮아져 있는 것이리라. 밥상이자 화장대이자 작업용 테이블인 책상만 있을 뿐,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것도 화가 난다. 가끔 의과대학 도서관을 찾아보지만, 도서관 입구에 가면 어김없이 병동 call이 온다. ‘환자 nelaton 해주세요


이런 현실마저 트레이닝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번 여름, 참으로 무덥고 지겹다. 진정한 내공쌓기를 얼마나 하고 난 후에 나는 자유로워질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