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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여자라는 변수

 

의대에 편입했을 당시, 내 소개를 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질문. “몇 년생이세요?”

내 동기들이 78∼79년생인 반면 나는 72년생이니, 의과대학 전체 학생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 병원에 들어온 지금에도 웬만한 레지던트들보다 나이가 많고, 심지어 최근에 임용된 주니어 스탭과도 나이가 엇비슷하다
.

의대 오기 전 대학원에서는 항상 막내였던지라, 세미나를 위한 복사, 모임 연락하기, 모임 후 뒷정리 등 각종 잡무를 도맡았었고, 어떤 실수를 하거나 무식한 말을 해도 용인되었었기에, ‘왕언니라는 의대에서의 상대적 지위 변동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1995년 무렵 석사과정에서 문화(culture)와 세대(generation) 문제를 공부할 당시 나의연구 대상이었던 당시의 신세대들과 일상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충격이란
!

그러나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과 병원 의사의 지위체계상 가장 아래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볼 때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오히려연장자 예우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당혹스럽다. 예를 들면 업무를 배정할 때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가는 파트가 정해져 있고(일이 적고 편한 곳) 그로 인해 나이 어린 남자 인턴선생님들이 상대적으로 일이 많고 힘든 곳으로 배정되는 게 당연시되니, 보이지 않는 질책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병원은 아직도 남자 의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일부 과에서는 아직도 여자 전공의 선발을 꺼려하는 현실에서, 자기 아래의 인턴이나이 어린’ ‘남자인턴이면 말도 쉽게 놓을 수 있고 스리슬쩍 개인적인 일을 시키기도 쉽고 함께 술 마시며 마음 편하게 터놓고 지낼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나이 많은’ ‘아줌마는 아무래도 뭔가 불편하고 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나 보다. 물론 나이도 어리고 귀여운 후배 여자 인턴이 오빠라고 상냥하게 부르며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내는 것과 자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줌마 인턴이 뭔가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윗사람 입장에서 보기에 어찌 같을 수 있겠냐만
.

하지만 우리가 공사분리를 모토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공적 영역 내에서는 그 영역 내에서 통용되는 질서를 근간으로 인간 관계와 업무가 진행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업무상 지위체계에서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면 나이를 불문하고 해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나이가 어린 후배라고 해서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반말을 하느냐 존댓말을 하느냐의 문제는 나이를 떠나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이고
.

역으로나는 나이가 많으니 이런 잡일은 어린 네가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간혹 윗년차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데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반말 그 자체보다는 자신에게 함부로 했다는 것이 불쾌하다는 말이겠지만, 역시 윗년차가 자기보다나이가 어린데도그런 언행을 보였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다
.

통계에서 나이와 성별은 기본 변수이다. 통계적으로 설정된 가설을 증명할 때 증명하고자 하는 가설이 시사하는 바가 나이와 성별이라는 기본 변수를 통제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통계적 분석의 시작이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과 인턴이라는 지위를 갖고 병원에서 일을 한다면 나이와 성별 변수를 통제한 이후에 내가 평가되는쿨한문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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