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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패기를 갖자

 

초턴일 때는 콜 한번에도 가슴 두근거리며 병동으로 달려간다. 환자 파악도 어렵고 기본 술기를 시행하는 것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쓴다. 두세 달이 지나면 제법 일에 익숙해지고 몇 개의 콜이 쌓여도 당황하지 않으며 전화로 오더를 내리기도 한다. 아주 가끔 진단명을 맞추거나 환자의 병세가 달라지는 sign을 잡아내며 좋아할 때도 있다.

여름을 보내고 나면 어떤 과를 돌아도 비슷한 인턴 job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환자 보는 일에도 예전 만한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중환이 생기거나 내가 잘 모르는 일이 발생해도 윗년차 선생님께 notify하는 것으로 끝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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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부는 요즘, 대부분 인턴의 관심과 고민은 전공 선택에 집중된다. 내부적 고민으로 마음이 심란하니, 평소 나를 괴롭혔던 외부적 요인에 대해서는 별로 괘념치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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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누구는 무슨 과에 지원하였다는 둥, 어떤 과는 어떤 기준으로 전공의를 선발할 것이라는 둥 소문이 무성하다. 이런 소문에 귀가 얇아지는 것은나는 과연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 자신이 없고 특별히 어떤 과를 꼭 해야겠다는 강한 집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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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질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국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돌려버린다면 문제는 너무 추상화되어 버리겠지만, 획일화된 의학교육의 틀, 수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우수한 석차를 기록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문화를 오로지 개인의 의지로 타파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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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과 설명회를 개최하여 수업으로 포괄하지 못했던 해당 과의 다양한 연구영역, 의사들의 역할, 비전 등을 소개하고, 의국원 선발의 다양한 기준들을 소상히 밝히는 과들이 많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관행시되었던충성경쟁의 분위기를 일소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선택의 기회를 열어놓는 계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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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으로 인턴 스스로 기존의 질서와 제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행보를 보이는 측면도 존재한다. 성적이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지원할 과에 소위이 있는 사람이 지원하는 것은 아닌지에 연연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일은 소홀히 하면서 의국장이나 윗년차 선생님들로부터 찍히지 않기 위해가시적업무에 치중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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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황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의 의지이자 진심이라는 평범한 명제일 것이다. 속칭 인기 있는 과의 부침은 7∼8년을 주기로 있어 왔고 의료기술의 발전이나 의료보험제도의 변화에 따라 과별 의사의 몸값은 변하기 마련이다. 구래의 관행대로 환자를 진료했을 때 풍요로운 삶이나 명예가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은 모든 과에 공히 마찬가지이다. 의사 10만을 바라보는 시대에 어쩌면 끊임없이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노려야 하고 교과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평생 공부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젊은 의사들이여, 좀더 넓고 멀리 보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후 패기 있게 미래를 선택하는 자신감을 보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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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모든 내용은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반성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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