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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의사들

 

어렸을 때부터 allergic asthma, rhinitis, conjunctivitis, dermatitis, 심지어 exercise-induced bronchospasm까지 종종 경험했던 나, 요즘처럼 공기가 차가울 때면 어김없이 allergic attack이 찾아온다. Antihistamine을 몇 알씩 한꺼번에 먹어도 소용이 없다. 수술방에서는 마스크 속으로 흐르는 콧물과 재채기를 참기 위해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병실에 들어가면 갑자기 재채기를 하며 코를 훌쩍거리는 나 때문에 이식 환자들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은 꺼림칙한 눈치다. 인턴숙소의 공기가 탁하고 건조한 탓인지 항상 목이 잠겨 있다. 코도 킁킁, 목도 킁킁.

둘러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 달째 dry cough, hoarseness가 심한 한 내과 인턴은 chest X-ray, CBC 괜찮다는 말 하나를 믿고 그냥 버틴다. Crohn’s disease가 있는 동료인턴은 며칠째 watery diarrhea로 보기만 해도 dehydration 상태임을 드러내는 초췌한 얼굴로 유령처럼 병동을 달린다. 며칠 전 oncology 파트에서 일하는 한 인턴은 때늦은 나이에 chicken pox로 입원까지 했다. 자신이 일하던 내과 병동에 입원한 그는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몸은 편하지만 자신의 일을 대신하고 당직을 서는 인턴들에게 너무 미안하여 좌불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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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뿐 아니라 레지던트도 마찬가지인 듯. 긴장도가 높은 파트로 배정된 여선생님의 menstrual cycle이 불규칙해지는 사건은 꽤 흔하다. 심지어 abnormal vaginal bleeding이 있기도 하다. 힘쓰는 일을 하는 외과계 전공의는 lumbar disc herniation 악화로 인한 요통을 참으며 버티다가 결국 2주간 입원하기도 했다. Migraine으로 β-blocker NSAIDs를 수시로 복용하는 동료, 복용량이 늘어나는 것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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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를 다니기 전, 누군가로부터레지던트는 아파도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참 멋있어 보였다. 투철한 직업정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래, 바로 그것이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 아니겠는가, 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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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그 자리로 내가 들어와 일해보니 내 자신의모든 것이 소모될 때까지 일하는 것은 매우 sustainable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는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한 만큼 다른 누군가가 잠을 못 자고 일하며 그걸 메워야 한다. 내가 몸이 좀 안 좋다는 소문이 돌면 나의 이미지도 유약한 사람으로 굳어질 것 같고 윗사람 눈에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냥 참고 지내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로 내려가는 사건이 발생해야 그나마 면죄부가 부여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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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주제에’, 골골거리면 어떤 과에서 나를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싶은 고민도 있다. 레지던트도 마찬가지, 일이 좀 많아지기만 하면 앓아눕는다는 낙인은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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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ism
의 핵심은 노동자들의 업무동작과 과정을 초 단위로 분할하여 평가함으로써 효율적인 노동과정을 재구성한 것에 있다. 주어진 시간에 높은 노동강도로 일할 수 있는 conveyer belt를 만들어 노동을 표준화하였고, 그것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여가시간을 늘리거나 임금 상승으로 대체하며 노조설립을 막았다. 나는 포디즘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인턴의 업무과정도 제대로 분석하고 효율화하여쓸데없는 일에 동원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잉여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질 높은 의사를 양성하는 지름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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