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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볼 때는

촉이 살아있어야 한다.

객관적인 근거와 검사 결과를 잘 유추하여 결론을 내리고 치료방향을 정할 수도 있지만

객관적인 근거가 없어도 뭔가 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단 이틀만에 환자가 중환자실에 갔다.

웬만한 폐렴도 하루 2번 엑스레이를 찍을 필요가 없다. 심지어 매일 찍는 것 조차 오바다. 웬만한 폐렴에서 CT를 찍는 것은 더욱 심한 오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제 밤, 오늘 아침, 오늘 오후 연달아 엑스레이를 찍었다. CT도 찍었다. 환자는 정작 호흡기 증상을 별로 호소하지 않는다. 임상적으로는 안정적이다. 그런데 산소포화도를 체크해보니 90% 밖에 안된다. 산소 6 liter를 하고도 산소포화도는 오르지 않는다.

 

별로 힘들지 않다며 어리둥절해 하는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냈다. 그리고 나서 찍은 엑스레이는 이미 폐가 다 허옇게 변했다. 인공삽관 직전이다.

 

 

환자는 2기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번 2월 초 4번의 항암치료를 다 마친 상태였다. 겨드랑이 림프절에 병이 없던 환자라서 굳이 방사선 치료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종양크기가 3.5cm 정도 되니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호르몬 치료를 하려던 차였다. 연세가 있으시니 굳이 무리해서 치료를 강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환자가 그저께 외래에 왔는데

영 감이 않 좋았다.

4번째 치료가 유달리 힘들었다고 했지만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다고,

그리고 오늘이 나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라며 스카프를 선물해 주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환자는 별로 입원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몇일만 경과를 보자며 내가 억지로 입원을 시켰다.

그랬던 환자가 오늘 중환자실로 갔다.

 

 

치료가 끝났지만 맘을 놓을 수 없다.

이런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드문 일도 아니다.

내가 다 설명하는 항암치료의 부작용도 아니다.

정말 다 설명하려면, 항암치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해야 한다. 난 그렇게는 안한다.

 

뭔가 이상한 느낌으로 환자를 입원시켜

비교적 빠른 조치를 받았고 최대한의/최선의 치료전략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 촉이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에 잠시 흐뭇하다.

문득 환자가 준 선물 꾸러미를 열어보니

외롭고 힘들어서 항암치료 포기하고 싶었는데

무사히 잘 받게 해줘서 고맙다는

할머니 환자의 삐뚤빼뚤한 손글씨 엽서가 있다.

무사하지 않으니 마음이 무겁다.

 

남편도, 자식도, 직계 가족도 없는 외로운 환자.

몇일만 고생하시라고, 꼭 나아서 밖으로 나가시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1년에 한두명씩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던 중/받다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긴다.

환자에게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희승 선생님,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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