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미나리와 계란

이수현 슬기엄마 2013. 2. 21. 20:52

 

환경 오염이 덜 된 유기농 음식,

깨끗하게 준비한 음식,

정성껏 만든 음식.

아줌마 환자들이 자신을 위해 일상적으로 노력하는 것들이다.

당신이 먹어보니 맛도 깔끔하고 염분도 낮은 것 같다며 소금을 사다 주기도 하고

동네 뒷산에서 주었다며 밤을 쪄다 주시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밤은 처음이라고 하니 옆집 창고까지 뒤져서 밤을 더 삶아다 주신다.

 

당신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거라며 꾸러미 달걀을 갖다 주신다. 세줄 삽십알. 마트에서 파는 그런 달걀보다 훨씬 속이 알차고 튼실하다.

 

멀리 대구 사시는 분, 미나리 한박스를 손수 가지고 오신다. 벌써 세번째다. 뇌전이 방사선 치료 이후 걸음걸이가 아직 완천치 않은데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서울 오는 기차를 타신다.

 

내가 마음으로 늘 미안해 하는 환자, 지난 몇개월 동안 뼈전이로 인한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나같으면 그 긴 시간동안 견디기 어려웠을 고통의 시간이다. 그녀는 내가 시키는 대로 진통제를 먹고 진통제를 붙이고 재활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였다. 모든 치료는 치료적 효과 이면에 부작용이 있었다. 그녀는 만족스럽지 못한 나의 치료과정을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 그녀의 고통이 과연 언제 끝날지 나도 자신이 없는데, 그녀는 매번 예쁘게 포장한 쿠키를 선물해 주신다. 바쁘니까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달콤한 쿠키라며. 어제 만난 그녀는 몸놀림이 많이 가벼워졌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쿠키를 먹는다. 부드러운 쿠키, 그러나 내 마음은 아직 무겁다.

 

작년부터 배우기 시작한 동양화 그림 솜씨를 발휘해 잉어가 용으로 승천하는 그림을 그려다 주신다.

올해 나의 길운을 빌어주고 싶으셨다고 한다. 버스로 5시간 떨어진 곳에 사시는 분이, 바쁜 월요일 외래, 긴 대기 시간을 기다려 그림을 주고 가신다. 당신 진료는 4월인데 그림을 주고 싶으셔서 외래로 오셨다.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우리 치과병원에서 치료받으시면 좋겠는데 멀리 사셔서 부득이하게 치료를 미뤄놓은 상태인데, 그림을 주고 싶어서 오셨단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오신 분, 나와의 인연은 오늘로 5번째 만남에 불과한데 치료받는 동안 고마웠다며 예쁜 물고기 수저받침대 4개를 선물로 주신다. 항암제 맞는 것도 환자, 부작용 고생하는 것도 환자,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견디는 것도 환자, 나는 그냥 숟가락 하나 얹는 심정으로, 그리고 부질없이 말로만 힘든 그를 격려하는 것에 불과한데, 나한테 고맙다고 하신다. 항암치료가 끝나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 밥 먹을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그런 선물을 받으면서

환자들의 일상과 일상에서의 투쟁, 삶의 어려움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인 자신보다

자신들의 주치의인 나를 더 배려해 주고 위해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다.

나를

저 멀리 있는 한 명의 의사가 아니라

내 마음을 주고 싶은 그 누군가로 대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환자인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일 잘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나니까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유방암 발병 평균 연령이 높은 사회에서 유방암 환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누군가의 부인, 혹은 누군가의 어머니다. 그래서 정치적 세력도 있다. 재단도 많고 기부금도 많다. 그들의 자식은 이미 다 성장하여 사회적 기반을 닦고 있고 그들의 남편은 이미 명망있는 사회적 인사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은 40대 중반.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기틀을 잡지 못한 채 한창 바쁘게 일하고 삶이 끝없이 고단한 나이다. 아이들 교육비도 많이 들고 남편도 바깥 업무로 허덕인다. 나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해 놓지 못한 상태에서 덜컥 병에 걸려 버렸다. 남편과 가족, 아이들을 위해 내 존재를 잊고 그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젊음을 바쳤건만, 병에 걸린 나는 누군가의 서포트를 기대하기 어렵다.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 그런 삶의 살아가는 환자들의 일상이 고단하고 외롭고 서럽다.

 

그런 그들이 호주머니를 열어

나에게 비싼 커피 한잔을 사다주고, 음료수를 사다 주고 간다.

그런 정성을 받을라 치면, 목이 메인다.

 

무거운 미나리와 계란 꾸러미를 들고 오는데 손가락이 끊어질 것처럼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어떻게 병원까지 끌고 오셨을까. 그들의 CT결과, 그들의 피검사 결과를 다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민망스러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