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그녀의 힘

이수현 슬기엄마 2013. 3. 12. 02:51


허리가 아파서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병원에 왔다.


유방암

간, 폐, 전신 뼈, 골수, 림프절 전이


이런 무시무시한 병들이 그녀의 진단명이 되었다. 


척추 전이 때문에 그렇게 아프고 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항암치료에 앞서 통증 조절을 위해 방사선치료를 먼저 해야 했다. 이미 골절이 온 부위, 곧 골절이 되어 신경을 누를 것 같은 부위, 급한 대로 그런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피검사를 하면 남들 백혈구, 적혈수, 혈소판의 반도 안되는 수치였다. 항암치료를 하면 대개 이런 조혈기능을 하는 세포들이 파괴되어 수치가 떨어지게 되는데 그녀는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골수에 병이 있는 한 그런 수치들은 절대 좋아질 수 없다.

척추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냥 컨디션 회복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처음 

녀는 

너무 통증이 심해서 

내가 병에 대해 설명을 해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먹을 정신이 없었다. 


최초로 암을 진단받은 환자, 특히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나는 가능한 선에서 개괄적인 설명을 한다. 

아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아도 

환자의 전체적인 예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해보는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 


환자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지금 내가 발딛고 서 있는 땅의 현실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지인 다른 그 누구가 아닌 본인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그러나 그녀의 몸 상태는 나의 설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나빴다. 설명이 문제가 아니었다. 매번 치료가 무사히 잘 진행될 것인지 그 순간 순간이 마음졸임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매번 조심조심 항암치료를 했다. 9번 항암치료를 하는 내내 내 마음은 살얼음판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별로 개념치 않는 것 같았다. 적당히 무심한 얼굴로, 내가 아무리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해도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수치가 너무 낮아 항암치료를 못할 거 같아요. 일주일 쉬고 경과를 보면서 진행합시다.' 


'네 잘 알겠어요. 다음주에 오면 되죠? 진통제 떨어졌는데 약 좀 챙겨주세요' 


그 정도의 반응이 전부였다. 



다행히 항암제 반응이 좋았다. 

그녀는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신통하게도 환자는 잘 견뎠다. 나는 안절부절, 초조불안인데 환자는 별 마음의 변화없이 무덤덤한 것처럼 보였다. 환자가 자기 병의 심각성에 대해서 너무 모르나?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나의 경각심이 점점 풀려가려고 할 무렵, 9번 항암치료를 하고 찍은 사진에서는 다시 병이 나빠지는 부분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뇌 증상이 생겼다. 어지럽기도 하고 방향감각도 이상하고 얼굴에 뭐가 닿는 느낌도 이상하고 그녀는 명확히 자신의 증상을 묘사하지 못하였다. 


뇌 MRI를 찍었는데 다행히 뇌전이는 아니고 원래 있던 머리뼈의 병변들이 나빠진 것 같다. 특히 12개의 뇌신경이 나오는 머리뼈 아랫 부분이 나빠져서 그곳을 지나는 신경들이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곳을 타겟으로 하여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였다. 


내가 그동안 환자에게 일일히 사진을 보여주지 않아서 인지 그녀는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셨나보다.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는 선생님 외래 차트에 환자에게 어떤 설명을 했는지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선생님은 환자의 한마디를 옮겨 놓으셨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할 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매번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걸 참고 계속 치료했어요. 

정말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치료였어요.

이번에도 방사선 치료 때문에 선생님을 만났지만,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래요.


근데요

다시 보게 되더라도 이제 치료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나에게 그런 내색을 전혀 내비추지 않았었다. 

질문을 하면 다소 뚱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녀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병에 대해,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금의 병과 치료가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며 

이 생을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읽지 못했을 뿐이다.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지금의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고 있는 그녀의 힘을 몰라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