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온 병원에 흩어져 있는 나의 환자들

이수현 슬기엄마 2013. 3. 25. 19:08


지난 몇달간 신환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다들 나랑 인연이 오래되서 

척하면 척인 사람들이다.

싸울만큼 싸우기도 했고, 원망도 하고 화해도 하고 그러기를 몇번 한 사람도 있다.

서로에게 삐진 적도 있지만 

병이 좋아지면 우린 금방 화해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익숙해 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고 

우리는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지금의 관계가 되었다. 

(아마 나를 견디지 못한 환자들은 다른 선생님을 찾아 떠났으리라)


그래서 내가 검사결과를 꼼꼼히 알려주지 않아도, 약 처방에 빵꾸가 나도,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원하는 날짜에 검사를 할 수 없어도, 이제 섣불리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선생님 정신 없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별로 서운해 하지도 않고 나에게 따지지도 않는다. 


나도 이제 환자 이름만 들어도 어디에 병이 있는지 다 안다. 

환자 안색만 봐도 무슨 피검사가 나빠졌을지 안다. 

최근 종양표지자 수치도 기억이 난다. 

이 환자에게 잘 듣는 약이 뭔지, 조영제 부작용이 심한지, 함께 다니는 보호자는 누구인지, 보호자 성격은 어떤지도 안다. 그래서 서로에게 아주 익숙하다.


잘 아는 환자만 보니까 진료하기가 수월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오래된 환자들이다 보니 병이 깊다. 병을 앓고 견뎌온 시간도 길다. 

그래서 한번 나빠지면 다음 번 약을 결정하기가 힘들다. 쓸만한 약은 다 썼다. 


병이 오래된 환자이다 보니 병원 왕래하는 것도 힘들어 한다. 

그래서 전전날 미리 CT 사진을 찍고 진료날 다시 병원 오는 것도 힘들어 한다. 가능한 병원 방문 횟수를 줄여야 한다. 당일 CT를 찍고 바로 이어서 진료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판독을 받기가 어렵다. 그래서 미리 예습하며 고민할 수도 없다. 당일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사진을 들여다 보고 약제를 변경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약제를 변경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 쓸만한 약들을 찾기 어렵다.


그런 환자들이 입원을 하면

문제가 심각해서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환자들은 종양내과에 입원하지 않고 

외과에

신경외과에

재활의학과에 

여기 저기 흩어져서 입원을 하게 된다.

수술을 하거나 

종양내과에 입원해 있는것 보다 해당 과에서 해줄 것이 많으면 

거기서 환자를 전담하는 것이 환자나 의사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아침 회진은 동선이 아주 길다. 

환자들이 이과 저과에 입원해 있다. 

본관, 어린이병원, 심혈관병원, 제중관....

가보면 외과 선생님이 수술 설명을 열심히 해주고 계시거나 

땀을 뻘뻘 흘리며 드레싱을 해 주고 계신다. 

환자를 위해 몸으로 직접 뭔가를 해 주는 다른 과 선생님들과는 달리

종양내과 의사인 나는 그냥 뻔뻔하게 말로만 벌어먹고 산다.

선생님들께 계속 신세를 지게 될테니 조아리고 인사라도 잘 해야겠다.


내가 처음부터 쭉 진료해온 환자인데도 

암환자는 대하기 어렵고 예민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까칠한 환자들을 진료해 주시는 우리 병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릴 뿐이다. 

아침 회진이면 나는 

그들의 노고에 밥숟가락만 얹은 채 고맙다는 칭찬을 듣는 뻔뻔한 의사로 회진을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