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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화번호를 주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환자들끼리 전화번호를 공유하기 때문에 내가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내 번호를 아는 것 같다. 카카오톡에 환자들 이름이 많이 떠있는걸 보면...)


신장, 심장기능이 않좋으면 번호를 알려드린다.

빨리 조치해야 할 위기상황을 맞이하기 쉽기 때문이다.

임종이 가까왔는데 환자와 가족이 준비가 안된 것 같으면 번호를 알려드린다.

불필요한 의학적 처치를 받지 않도록 준비하는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도 실재 전화는 별로 안하는 편이다.

궁금한 것은 블로그에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고, 문자를 보내시는 분들도 있다. 직접 전화를 하는 분들은 별로 없다. 그냥 내가 주치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 안도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가끔 전화를 할 위기 상황이 전혀 아닌데, 빨리 입원하게 해달라고 전화하는 눈치없는 환자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면 냉정하게 말씀드린다. 그런 이유로 전화하시라고 번호 알려드린거 아니라고.)


최근 몇일 사이 모르는 전화번호에서 나에게 전화가 여러번 왔다. 안받을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외래, 회의 등등의 사정이 있어 전화를 못 받았다. 오늘도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두세번 왔다. 끝나고 점심을 먹는데 전화가 또 와서 이번에는 받았다. 누군지 기억나는 환자다. 


선생님, 저 열치료 받아도 되요?

거기서 주치의랑 상의하라고 그러더라구요.


예전같으면 불같이 욱 했을 것 같다.

지난 2월에 검사하고 외래를 봤어야 했는데, 그동안 오지도 않았으면서, 불쑥 열치료를 받기 위해 주치의랑 전화로 상담을 하다니!

그리고 입증도 안된 열치료를 받는 것을 물어보시다니.


그런 것들이 대개 보험이 안되고 비싸다. 환자들은 병원에 와서 검사할 때는 보험이 되냐 안되냐, 이것저것 따지고 약값도 따지고 치료 성적도 따지면서, 이렇게 입증이 안된 치료나 약제,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하는데 몇백만원을 쓰면서도그 효과를 따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으니 너그럽다. 참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내가 지친건지, 마음이 너그러워진건지,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된건지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검사할 기간을 많이 넘겨 버려서 지금 병 상태가 어떤지 모르겠네요. 


허리 아프신건 어때요?

(뼈로 전이된 삼중음성유방암이다.)


요즘엔 별로 안 아파요.


다행이네요.

기분은요?

(탁솔 케모하면서 우울증이 왔다. 매번 입원해서 항암치료하고 많이 울고 그랬었다)


요즘엔 안 울고 기분도 많이 좋아졌어요.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근데 왜 집에 안 있고 요양병원에 계세요?


...



뼈로 전이된 후 항암치료 6번 하는 동안 너무 힘들어 하셨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원칙은 처음 시작한 항암치료로 병이 악화된 때까지 계속 치료하는 것이다. 병이 나빠지면 다른 항암제로 바꾼다. 또 병이 나빠질 때까지 이 약을 계속 쓴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면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죽을 때까지 항암치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일부 환자들은 항암제 독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3-4년동안 같은 항암치료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개는 병이 좋아지면서도 약제 독성이 쌓여 치료를 무한정 하지 못하고 쉬게 된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그런 기간 동안 호르몬제를 쓰면서 전신 전이의 가능성을 최대한 막을 수 있고 HER2 양성 환자들은 항암제를 빼고 표적치료제만 맞으면서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삼중음성 유방암은 항암제가 아니면 다른 치료 대안이 없기 때문에 독성으로 항암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몸에 병이 남아있어도 일단 치료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병이 나빠지는 걸 확인한 다음 그때 다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이 환자도 첫 치료 6번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항암치료를 유지할 수 없었다.

3개월 간격으로 검사하면서 경과관찰하다가 병이 더 나빠지면 항암치료를 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그녀는 외래에 오지도 않고 멀리 요양병원에 가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병이 나빠진게 아니라면 나도 지금 당장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할게 아니니 일단 환자에게 검사를 하러 오시라고 했다.


5월에 가족들하고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6월에 갈게요. 여행가기 전에 검사했다가 만약 나빠졌으면 여행도 취소해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 컨디션 좋으니까 여행다녀와서 검사할께요.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세요. 그러면 꼭 6월에 검사하러 오세요.


근데, 열치료 해도 되요?


그냥 하시라고 했다.

너무 비싸면 조금만 해보고 굳이 열심히 계속 하지는 마시라고 했다. 

의사가 말하는 지침이 뭐 이런가? 

너무 애매하고 

하라는건지 말라는 건지,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모르겠는 대답이다. 


의사가 말하는 대로 꼬박꼬박 원칙을 실천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일부이고

대개는 당신 마음대로 하신다. 

하고 싶은거 다 하고 먹고 싶은거 다 먹고 나서  나에게 묻는다. 

자기 행동의 정당화, 합리화하는게 필요하니까. 


예전에는 그런 질문을 하시면 

의학적으로 타당한 검사나 식품이나 치료가 아니면 절대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도 환자들은 다 하고 있었다. 나의 설명이 부질없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원칙적으로 대답하고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확고하게 설명하는 경우 환자들이 대체의료나 건강보조식품을 섭취하는 비율이 낮다는 연구가 있었던 것 같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하시라고 했다.

병이 나빠졌을 때 나의 선택은 항암제 뿐이다. 언제 시작하든 항암치료를 다시 하면 환자는 많이 힘들어할 것이다. 설령 병이 좀 나빠졌다 하더라도 지금 좋은 기분으로 여행다녀오고, 매일 아프지 않고 우울하지 않게 지내실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은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열치료도 하시고, 여행도 다녀오신 다음에 사진 찍으시라고 했다.


열치료는 정말 환자에게 해가 없을까? Heat energy 가 종양세포에 stress로 작용하여 세포들이 생존하기 위해 활성화될 수도 있다. 종양세포의 활성화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활성산소에 의한 스트레스(Reactive oxidative stress)가 정상세포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암세포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연구해서 입증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온열치료랑 뭐가 다른 걸까? 온열치료는 어떤 경우에라도 다 좋은 걸까?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많다.


그런 복잡한 내 마음을 알리기에 힘과 의욕이 없다. 그래서 그냥 하시라고 한 걸까?


현대 의학에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는 환자들은

대체요법을 찾고 나름의 대안을 찾아 헤맨다.

그들의 행동을 무조건 비난할수는 없을 것 같다. 이해는 된다. 


그래서 환자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정보에 대해 자기 나름의 안목을 갖고

자기 자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록 슬프고 억울하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도 계산해봐야 한다.

그 시간을 후회없이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내용들도 방송에서 보도해주고 다큐멘타리도 만들어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신약, 신기술이 시장성을 획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만큼까지는 안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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