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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전이 이후 4년이 넘도록  

의사가 처방한 호르몬약을 먹지 않고 지냈다며 충격 고백 (2013.7.27 블로그에 올린 글) 을 했던 그녀가 일주일이 지나 다시 외래에 왔다.



그녀의 충격 고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치료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보험으로 다시 페마라를  처방하는게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대답은 안된다는 것.

나도 내심 원리상으로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비보험으로 비용을 다 지불하고 약을 처방받겠다고 해도 

그것은 '임의 비급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다. 

임의 비급여는 절대 처방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 안타까운 일이다.

페마라 한달에 이십만원이 채 안되는데 

환자가 지불할 능력과 의향이 있으면 이 환자에서는 페마라를 쓰는게 좋은데...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이렇게 어이없는 사태를 초래한 데에는 

그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로서 폐경 후 여성에서 첫번째로 쓸 수 있는 페마라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왔지만

별로 애가 타지는 않았다.

솔직히 마음 속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찍은 사진을 보니 새로운 병이 생긴 것은 확실하다. 치료가 필요하다.


원래 폐경 후 여성의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로 페마라나 아리미덱스, 아로마신 등의 먹는 약이 보험이 된다. 한달에 한번 맞는 주사약 파슬로덱스도 약효가 좋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보험이 되지 않는다. 이 환자는 페마라와 아로마신이 처방으로 나간 상태이다. 아리미덱스는 기전상 페마라와 같은 약이다. 현재 이 환자에서 보험으로 가능한 약은 폐경 전 여성에서 사용하는 타목시펜 뿐이다. 항암치료를 하기에는 병이 심하지 않다. 아직 병은 뼈에만 국한되어 있다. 여기 저기 뼈로 전이된 곳이 많지만 병변이 아주 작고 뼈의 구조를 파괴하지도 않았고 증상도 별로 없어서 굳이 항암치료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난 내심 타목시펜을 다음 치료약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다시 새롭게 다른 약을 처방한다 하더라도 

지난 4년동안 의사에게는 아무말도 안하고 자기 맘대로 약을 안 먹고 지냈던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나이 20이 넘으면 자기 습관이나 행태, 가치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약도 흐지부지 않 먹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

나한테는 치료를 제대로 받겠다고 각서라도 받아야 하나.

어떻게 협박을 해야 하나.

어떻게 충격을 줘야 의사가 시키는대로 말을 잘 들을까.

별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뾰족한 답이 없다.

자기 운명대로 살게 되겠지.

이 환자에게 내 노력과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상의 상황을 다소는 썰렁하게 설명하였다.

페마라는 더 이상 처방할 수 없다고.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녀를 원망하는 말을 내비치고 말았다.


왜 그러셨어요...

좋은 약인데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게 되었잖아요.

제가 오늘 드리는 약도 먹어보고나서 

힘들다고 안 먹고 그럴까봐 걱정이에요.

그러면 이제 우린 대안이 없어요. 

항암치료로 넘어가야 되요.

지금은 굳이 항암치료 할 단계는 아니에요. 

호르몬제가 힘들었다고는 하시지만 항암치료가 더 힘들다구요. 

그럼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병원에 입원시켜서 사지를 결박하고 서라도 항암치료를 받게 해야 하나..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네요.


...


제가 오늘 처방한 타목시펜은 앞으로 잘 드실 건가요?



타목시펜도 예전 페마라랑 비슷한 부작용으로 환자를 괴롭힐지 몰라요. 그거 잘 참을 수 있겠어요? 환자 결심이 중요해요. 그렇게 흐지부지 할거면 난 환자 진료하고 싶지 않아요. 치료는 의사 힘만으로 잘 되는게 아니에요. 환자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진료받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많다구요. 이 약 잘 드실거에요?



나의 끝없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고분고분 계속 예스라고 대답한다.

정작 할 말을 다 하고 보니 내가 민망하다. 



지난 주에 선생님이 저 때문에 화내고 속상해하고 설명하시는 걸 보고

솔직히 감동을 받았어요.

이렇게 나한테 잘 해주실려고 하는데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겠다 그런 결심을 하고 오늘 온거에요.


갑자기 내가 당황스럽다.

의사에게 입과 귀를 닫고 수년을 지냈던 그가 

먼저 말문을 여니 뭔가 좋은 조짐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증상이 힘들어서 페마라를 안 드신 건가요?


이미 환자에게 물어본 질문인데 

톤을 바꿔서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본다. 


사실은요

부부관계할 때 너무 아팠어요.

그러니까 남편을 피하게 되고

그러니까 남편이 나한테 불만을 갖는것 같고...

약을 안 먹으니 바로 괜찮아 지더라구요

다시 약을 먹어 봤는데

부부관계할 때 내 몸이 조각조각 다 찢겨져 나가는것 같았어요. 

도저히 부부관계를 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자꾸 요구하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구랑 상의하기도 그렇고, 

물어볼 데도 없고...


당시 주치의는 남자 선생님이셨다. 

의사에게 상의해 볼 생각은 전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이 약을 다시 먹으면 

또 다시 비슷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요즘은 부부관계 별로 안해요.

나이 먹어가니까 뜸해지는거 같아요.


페마라나 타목시펜 모두 유방암 치료에 사용하는 호르몬제는 

여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질이 건조해지고 위축되서 부부관계 하는게 힘들어요. 대부분 다 그래요. 

그러니까 윤활제나 질 점막에만 흡수되도록 만든 에스트로젠 젤 같은 걸 부부관계 하기 전에 바르고 나서 해야 되요. 안그러면 아파요.



진료실에서 이런 얘기 잘 안한다.

안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외국에는 종류별로 다양한 윤활제와 호르몬 젤, 크림 등이 있어서 

환자 상황에 맞게 처방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가용한 제품이 몇가지 안된다. 

언제 한번 가서 왕창 사오고 싶다. 


그리고 

유방암 환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상담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서적인 교감과 믿음이 있다면

환자가 훨씬 덜 힘들것 같다. 

우리나라는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으니 이런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주 후에 그녀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왠지 꼬박꼬박 잘 먹고 오실 것 같다.

그 사이에 나이를 더 먹었으니 

이제 폐경증상이 별로 심하지 않을 것이다.


긴 치료의 여정,

나 아픈거 남에게 말하기 싫다. 

터놓고 상의하기 어려운 증상들도 많다.

환자들은 그런 증상이 자기에게만 있는 줄 안다.

걸 끙끙 싸짊어지고 혼자 괴로워 하느라 더 힘들다.  

참 힘든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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