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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엊그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한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수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 

관상동맥조영술을 비롯하여 심장검사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별 문제 없으셨다.

역류성 식도염 증상과 감별이 잘 안되어 가끔 위장관 약을 드려보기도 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흐지 부지 넘어갔다. 


몇일 전부터

잊고 있던 증상이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더 강도가 심하다.

엄마는 왠만하면 나에게 전화 잘 안하시는데 

오늘은 힘들어서 병원에 오고 싶으시다고 한다.


다행히 외래 진료가 없어 엄마를 모시고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가운을 벗고 보호자가 되어 

이과 저과를 예약하고 검사하고 약 받고

그렇게 병원을 2-3시간 돌아다니다 보니 

회진도는 거 보다 훨씬 다리도 아프고 기운이 빠진다.


엄마는 

갑자기 아프니까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하시며 우신다. 

외할아버지는 그보다 더 먼저 몇년 전에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다 서울에 올라와 있고

늙으막에 가길 어디 가냐고 

원래 사시던 고향에서 끝까지 혼자 지내셨다. 

돌아가시기 2달전에 폐암 뇌전이를 진단받고 병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제서야 자식들이 외할머니를 제때 못챙긴 것 아닌가 싶은 후회로 다들 침통해 하셨다. 

매년 여름 휴가 같이 보내고 자식들이 순서 정해 돌아가면서 한번씩 고향에 다니러 가고 그렇게 했지만

횟수로 치면 몇번 안되었고 

별로 마음 많이 못 쓴거 같다고 후회하신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100일 넘게 매주 수요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가족미사를 보았는데

다들 후회 막급이셨다. 



오늘 엄마를 보니 

나도 후회가 되고 눈물이 난다.

지금까지도 나 뒷바라지 해주시는 엄마.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까지 다 돌봐주시는 엄마.

나 병원 생활 잘 할 수 있게 모든 걸 다 지원해 주시는 엄마.

그런 엄마가 아프다고 하니까 비로소 나도 시간을 낸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잘 해야할텐데...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아 가족 모두가 일을 해야 한다. 말기암 어머니 병간호를 담당할 사람이 없다.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니 돈이 많이 들고, 돈이 좀 덜 드는 곳은 그만큼 허술하다.

사실 어머니 컨디션이 꼭 병원에 계실 정도는 아니다. 

잘 못 드시고 기운이 없지만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다만 거동이 편치 않아 늘 도와드려야 하고 드레싱해야 하는 관도 두개다. 장루를 가지고 계시니 잘 관리해 드려야 한다. 이번에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오셨는데, 자식들이 항상 곁에 있지 못하니 할머니는 하루 종일 우두커니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있다. VRE 병동에 계시니 자원봉사자 출입도 안되고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돈이 없는게 문제인 가족이다.



그러나

돈이 많은 가족이라 해도 다른 걱정이 있기 마련. 

돈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은 자식들과 갈등이 많다. 유산이 문제가 된다.

돈이 없어도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지만

돈이 많다고 걱정이 없고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닌거 같다. 

돈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벌어놓은 돈은 없어도 똑똑하게 자식 잘 키워놨다고 생각하며

그거 하나 자부심으로 내걸고 살았던 분들도 있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아프고 힘들지만 

바쁘고 잘 나가는 자식들은 병원에 올 시간도 없다.  

나는 자식들을 만나기 어렵다. 시간이 없는 자식들을 만나려면 몇번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주말 저녁에 만나야 한다.  


다양한 가족들을 만난다.  

이제는 일종의 만성질환이 되어버린 암을 치료하는 길고 긴 여정에는

그동안 취약하게 유지되고 있던 우리 삶의 모순과 헛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늘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외래에서 대기하고 약 받고 검사하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인생 별 거 없는데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 별로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잘 해야겠다.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이러고 사나 싶다. 


엄마 진료 차트를 훔쳐본다.

엄마는 내가 제일 걱정이라고 하셨다. 

내가 문제였나보다. 













  • 2013.08.16 17:46

    비밀댓글입니다

  • 달콤한 우주 2013.08.19 00:30

    제가 유방암 수술을 끝내고 방사선 치료를 앞두었을 때,
    86세이신 아빠의 방광 결석 수술...
    통증이 심해지셔서 신중히 수술을 검토하고 상의하고
    결국 수술을 통해 100개도 넘는 동글 동글한 돌들을 꺼내셨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 되었어요.
    수술 전날까지 노인복지회관에서
    8년째 일본어를 강의하셨는데
    수술이후 치매 증상이 시작되었지요.
    처음엔 섬망증으로 한두달 이후 괜찮아지실거라 했지만
    두달이 지난 이후에도 배회, 불면, 초조, 화냄, 짜증, 엉뚱한 표현들 등등
    전혀 개선되지 않아
    덕분에 저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내내 4시간정도 밖에 못 잤지요.

    이후 아빠는 MRI도 찍고 뇌기능검사도 하고 혈액 검사를 한 결과
    치매 중기...
    이미 4~5년 전부터 진행되었을거라 하시는데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평생 가르치시는 일을 하셔서
    가족들이 몰랐다가 수술로 인해 더 들어나게 된거라 말씀하시는데...

    덕분에 딸 다섯 돌아가면서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 운동, 건강식품 이외 처방약 등등 집중한 결과
    어떤 부분에선 치매가 진행되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선 좀 똘똘해지신 것 같아 (아이 같아지셔서^^)
    더 이상 나빠지시지만 않았으면 바래봅니다.

    자유롭게 자신과 일에 몰입해 살다가
    나와 아빠에게 찾아온 큰변화로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생활들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오래 오래 내 곁에 계시길 바래요~~~

  • 복이맘 2013.09.02 23:51

    교수님 7685129입니다. 외래를 하고오면 교수님은 참 편안함을 느낌니다. 이글을보니 더욱 가깝게도 느껴지고요. 오늘5차를 맞고 부산에 내려오는데 4차후 검진결과가 좋다고하니 좀 두렵지만 남은3차도 열심히 맞고 스고하시는 교수님께 더 좋은 모습모여드리고 싶어집니다^^ 교수님 진료잘봐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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