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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대기실 풍경은 생각보다 다이나믹하다. 


아직 내가 암환자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 싫어서, 아직 세상을 똑바로 응시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하고도 말 안하고 조용히 대기하다가 나만 만나서 진료받고 돌아가는 환자도 있고 


몇년 치료받으면서 겪을거 다겪고 

마음고생도 다 하고 

그래서 힘들어 하는 후배 환자들을 만나면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환자도 있고 


치료 주기가 맞아서 자주 만나다보니 

비슷한 형편과 비슷한 치료를 받는 환자들끼리 친해져서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만나고 

서로 연락도 하며 지내는 환자 그룹도 있다. 


그렇게 친해진 환자들은

누가 열나서 입원하면 문병도 가고

좋다는 거 있으면 나눠 먹고

누가 우울해 하면 같이 만나서 수다도 떨어주며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의사의 한마디보다 동료 환자들의 지지가 그들에게 더 힘이 되기도 한다. 


그 중 

한 그룹의 환자들은

나이도 비슷하고

그래서 아이들 연배도 비슷하고

사는 형편도 비슷하고 

친해질 수 있을만큼 성격도 비슷하다. 


의사인 나는 

젊은 그들의 재발 위험도도 비슷하게 높다는 것을 내심 우려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위험군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재발하기 시작했다. 

한명이 재발하면 나머지 환자들이 크게 동요했다. 나는 어떻게 될까...

걱정 마시라고, 괜찮을 거라고, 섣불리 위로하기에 

그들의 임상적 위험성은 통계적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확률적으로 재발 위험성이 높다해도 

실재 재발을 하는 것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걱정하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고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예민한 그들의 걱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세명 모두가 재발하였다. 

그러기도 힘든데..


한명은 최근에 돌아가셨다.

나머지 두 환자도 항암치료를 계속 하고 있지만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얼마전 한명이 입원했고

엊그제 또 한명의 환자가 입원했다.

그들은 입원해서 만났다. 


이번에 입원하기 전까지

그들은 병은 나빠지고 있었지만 전신상태는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그들은 여전히 아이들 학교 뒷바라지를 하고 있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약간 숨이 차고

약간 통증이 있지만

약 먹으면서 증상을 조절하고 집에서 지낼 수 있었는데

병이 나빠지면서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던 만큼 나에게 실망도 하고 

나에게 매달려서 치료받았던 만큼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지난 달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그만 하는게 좋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그럴 순 없다고 말했다.

보험이 안되는 약이라도 자기는 치료를 더 받겠다고 했다.

이미 몸무게는 40kg 까지 줄었고, 최근 항암치료는 다 한두번만에 실패하고 있었다.

정말 쓸 약이 없었는데 

그녀는 죽더라도 항암치료를 하겠다고 우겼다. 

나는 세 번의 외래를 매번 한시간 이상씩 그녀와 실갱이를 벌였다.

남편도 회사 휴가를 내고 외래에 찾아 와서 제발 아내의 뜻을 따라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항암치료라는게 환자가 원한다고 하는게 아니라고, 지금은 치료적 효과를 기대하고 쓸만한 약이 마땅치 않다고, 괜히 항암치료 하다고 고생만 하게 될거라고, 몇번을 얘기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울며겨자먹기로 항암치료를 하고 말았다. 


최근 1년동안 나빠지기만 했던 피부병변이 호전되는 듯 보이니 환자는 내심 병이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한 모양이다. 그러나 3주가 지나고 다시 외래방문이 예정되어 있을 무렵 그녀는 심한 변비로 입원을 하게 됬다. 항암치료가 힘들어서 음식을 거의 못 먹었나 보다. 애들 때문에 죽어도 입원은 안하겠다고 하는 그녀가 오죽했으면 변비때문에 입원을 하겠다고 했을까. 


입원하던 날 찍은 흉부 엑스레이를 보니 폐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결국 지난번 항암제는 일부 암세포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동안 수차례의 항암제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저항성 높은 암세포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른 장기로 전이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아, 역시 치료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괜히 항암치료를 했다' 싶었다.  


치료의 이득을 기대하기보다는 해가 더 크다고 판단할 때는 항암치료를 하면 안되는데...




'이 병으로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아요.'


환자는 손으로 자기 귀를 막는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했으면 좋겠어요.'


환자는 여전히 치료를 해야한다고, 피부가 좋아졌으니 다시 항암제를 쓰면 더 좋아질거라고 우긴다. 그러나 등쪽으로 새로운 피부 병변이 생기고 있었다. 


호스피스팀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시간을 고려해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환자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기독교 신자인데도 목사님 방문과 기도마저 거절하였다. 


늦게 퇴근한 남편과 한시간이 넘게 면담하였다.

남편은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부인의 고집과 뜻을 꺾기는 어렵다고, 10년이상 같이 살았지만 자기는 부인의 고집을 꺾은 적이 없다고, 원래 성격이 그런 사람이라고 나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환자는

집에 있는 두 딸도

친정 아버지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완화의료팀도 방문을 갔다가 몇번을 거절당했다. 



내 생각에 그녀는 이번에 퇴원하기 어려울 것 같다.

폐와 늑막에 병이 심해져서

흉수가 가득 고여있는데 그 물을 빼다가 기흉이 생겼다. 

기흉이 좋아지지 않는다.

아마 이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열이 나고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나는 환자가 마음을 좀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젊은 나이에 좋지 않은 병에 걸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 통증도 잘 조절되고 있고

의식도 명료하니

이 시간을 잘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다행스러운 것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데도 남편은 예민한 부인을 위해 2인실 비용을 감당하고 있고 

매일 저녁 퇴근 후 병원에 와서 쪽잠을 자고 간다. 

환자가 마음을 여는 유일한 창구가 남편이라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인것 같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데...

남편과 여러 차례 면담을 하면서 

남편도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고 이미 많이 지쳤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와중에

곧 죽을 것 같은 아내를 위해, 아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환자는 여전히 나의 어떠한 제안도 거부하고 있다. 

음압이 걸려 있는 흉관을 가지고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치료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인들로부터 결려오는 수십통의 전화도 받지 않고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그렇게 서서히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괴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젊은 엄마의 임종준비가 너무 어렵다. 

그녀 마음의 문을 열기가 너무 어렵다. 


매일 아침 회진을 돌면서

나는 환자별로 목표를 정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뭘 할 건지 환자에게 설명하고

저녁에 다시 평가하여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좋아지면 퇴원하고 다음 치료를 계획한다. 

이 환자에 대한 나의 목표는 임종이라는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직면하고 남은 시간을 잘 쓸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정했다.

그러나 그 목표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환자는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의사인 나의 판단으로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때 

앞으로 상태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나는 환자에게 솔직하게 얘기한다. 

죽음에 대해.


다들 

너무너무 힘들어하지만

결국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의사인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요청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위해 아무 도움도 못주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날씨가 좋으니 바깥 바람을 한번 쐬보시라고 말한게

전부이다. 






 






  • 윤경아 2013.10.21 09:25

    저는 이런 글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봐요.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참 고마워요. 저도 30대 애엄마지만... 헛된 희망만 품고 사는 것보다는... 쓰면서도 눈물은 나지만... 사실 힘든 사람은 저보다, 제 가족들이겠죠. 엇그제 친정엄마 생신모임이 있었는데... 참 슬펐어요. 막내딸인 제가... 5년 뒤 함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없다면... 얼마나 남은 사람들이 괴로울까... 죽음은 한 번이지만... 가족들은 모일 때마다 내 생각하며 괴로워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쨌든... 마지막 순간까지... 제 모습이 의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생명인지라... 가늘더라도 오래 살고 싶어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21 19:21 신고

      저는
      윤경아씨가
      굵고 길게 살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엄마생신때 슬퍼하지 마시고
      엄마에게 좋은 음식도 대접하고 마음따뜻한 선물도 하시고
      그러세요
      삶은 그런 순간의 기쁨이 모여서 보석이 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말 할 자격이 별로 없습니다만 ㅠㅠ )

  • 이유진 2013.10.21 10:08

    돌아가신 아버지가 항암 치료를 하던 때, 차트와 피 검사를 보신 한방계 선생님은 항암 치료가 아니라 공기 좋은 곳에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실 때 인거 같다고 오히려 지금 하는 항암치료가 더 해가 될거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같은 병원에 계신 양방 선생님은 그대로 약 투여 하셨고... 결국 한달쯤 후에 돌아가셨는데
    생각 해 보니 그래도 음식이라도 드실 수 있을 때 드실 수 있는거 맛있게 드시고
    좋은 공기도 쐬고 했으면 했는데...
    저는 그래서 항암을 할 것인지 안 할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병원에서는 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네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행여 운이 허락해서 조금 더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정리 하고 생각하고 소중한 사람 손 한번 더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아요.. 혼수상태로 모두 고생하고 힘들어 하는 것 보다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21 19:24 신고

      항암치료를 하는 것 보다
      항암치료를 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족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기대여명이 6개월이 안될거라고 생각하면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괜히 고생만 하고 치료의 득은 얻기 어려우니까요.
      다만 주치의는
      자기 환자의 예후가 좋을거라고,
      이번 치료를 하고나면 더 좋아질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치료를 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죠.
      저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언제 항암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기는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치료하여
      그나마 남아있는 활력과 에너지, 건강을 해치는 치료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 최지희 2013.10.23 08:19

    쌤~~ 어떤 환자였기에 고위험군 이었어요? 삼중음성?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25 14:06 신고

      임상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위험군이라는 대략의 범주 구분이 있지만
      그것이 상호작용을 하거나 다른 요인때문에 위험요인들이 상쇄되거나 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제가 그걸 너무 명확히 언급하면
      그 조건에 해당하는 분들이 너무 우울해 하시기 때문에
      명확하게 말하고 싶지 않네요
      통계적 확률의 분포와
      내 존재의 무게는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 달콤한 우주 2013.10.26 01:48

    올 한해는 참 다양한 과와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엔 저의 유방암 치료, 다음엔 아빠의 방광결석 수술, 다음엔 엄마의 뇌출혈로...
    병원에서 거의 10개월을 보내면서 좋은 의사와 나쁜 의사를 가늠하게 되는 못된 버릇이 생기게 되었어요.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은 시선이지만...
    병의 호전 여부보다는 병을 치유하려는 의사 선생님의 진심을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이지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제 맘을 움직이는 것은 환자를 향한 관심과 치료에 대한 고민과 진정성, 그리고 제일 맘에 드는 치료 목표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엔 눈을 마주한 소통이 있잖아요.
    저와 아빠는 다행히 좋은 의사 선생님 (상당히 주관적...)을 만나 (계속해야될 오랜 치료 부분들은 있지만 )
    치료를 위한 협력이 잘 되고 있어요.
    하지만 엄마의 경우, 추석을 앞둔 주간부터 연휴가 끝난 뒤인 열흘간 중환자실에서 한번도 담당의인 의사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R2인 주치의만 동동거릴뿐...정작 다른과와의 협진도 주치의는 담당과장 눈치보느라 연락도 못하고... 결국 기다리다 못해 같은 병원의사인 언니와 동료의사들의 자진적인 협진으로 사투의 열흘을 보내고 난 후 엄마를 보내드려야 했어요.
    갑작스런 뇌출혈로 건강하신 엄마를 보내면서 내내 화가 났던건 치료의 결과보단 시종일관 무관심했던 담당의의 무심함과 회피 아니 그가 보인 번거로움이였지요.
    해서 나쁜 의사라 생각해요.
    글의 의도는 이게 아니였는데...
    깊은 속상함이 자리하고 있다가 툭 튀어 나왔네요...ㅠ

    선생님을 생각하면 환자를 향한 관심과 일에 대한 성실함이 진심이라 여겨져
    한번도 뵙진 못했지만 가깝게 느껴져요.
    좋은 블로그에 좋은 정보,
    기쁨과 슬픔,
    말할 수 있는 것과 힘들지만 꼭 해줘야 되는 말들...
    기운 잃지 마시고 힘내 좋은 의료 환경와 좋은 의사 선생님으로
    늘 곁에 있어 주세요~(^^)*
    아마 선생님은 이 환자분 끝까지 놓치 않을거고,
    그 환자분과 그 가족들도 그 맘 때문에
    많은 위로가 될거라 생각해요.

  • 김원애 2013.11.02 13:24

    누구나 자기는 암에 걸린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막상 병에 걸리면 자기만은재발이나 전이가 안됐음하고 생각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정말 안좋은 상황이 왔을 때 의미없는 치료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가치있게 쓰고간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나 본인에게나 얼마나 큰 힘이 될까하고 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글을 보면서 두려워지기도 하고 무서워지는 맘도 당연한 맘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이니까 자기의 잣대로 비판하는 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

    1. 달콤한 우주 2013.11.03 17:35

      동감~(^^)*

  • Ann Yi 2013.11.09 19:27

    주님 강하고 따뜻한 손으로 환자 분들. 그리고 보시는 선생님 손을
    꼭 잡아주시고 힘을 주세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10 10:00 신고

      제가 받고 싶은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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