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암치료를 받으러 외래에 오면

환자는 일단 피 검사부터 합니다. 

그날 피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몸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외래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자기가 예약한 시간이 넘어도 앞 환자들 진료에 밀려 내 진료 시간은 지연되기 일수 입니다. 

그 전에 CT라도 찍었다 치면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초조함이 더해집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잔뜩 긴장해서 

1분 1초가 영겁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두어시간 진료를 기다리다가

겨우 주치의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의사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인사에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의사는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게 저의 모습입니다. 


바로 앞의 환자가 펑펑 울고 나갔습니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고

몸도 많이 약해져서  

제가 당분간 항암치료는 그만 하고 일단 좀 쉬자고 했습니다. 

환자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나는 억지로 짧은 시간에 이해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녀에게 내 마음을 이해시킬 수가 없습니다.

좋은 말로 인사하고 헤어지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은 잔뜩 굳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환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동안

막 나간 앞 환자 의무기록을 정리하고 

환자 명단을 다시 띄워서 

이번에 진료할 환자의 피 검사 결과 화면 띄우고

CT 사진 화면 띄우고

환자의 의무기록 화면을 띄웁니다. 

그렇게 여러개의 화면을 띄우는 동안 컴퓨터는 버벅버벅 한 개씩 화면을 보여줍니다. 

어제 리뷰할 때까지 판독이 안 나왔으면 그 자리에서 공식 판독결과를 확인하기도 하고

환자의 피검사 결과가 어떤지도 확인하고

걸어들어오는 환자의 품새를 보고 환자 컨디션을 짐작하고

지난번 외래 때 환자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뭘 궁금해 했었는지 메모도 확인하고

그러느라 

정작 내 앞에 자리잡고 앉은 환자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게 저의 모습니다. 


다행히 

이번 환자의 검사 결과는 좋습니다.

이번에 바꾼 약이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를 보니 나도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기 때문에 한껏 그를 격려해 줍니다. 

긴장하며 굳어져 있던 그의 얼굴도 비로소 환하게 펴집니다. 

나도 그제서야 겨우 빈곤한 미소를 보입니다. 


그 다음 환자는 상황이 또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환자는 상황이 또 다릅니다. 


수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을 단위로 내 얼굴도 굳어졌다 풀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백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보면서 오후 서너시가 넘어가면

내 얼굴은 완전히 굳어버립니다.

근육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화가 필요한 환자, 오래 토론해야 할 것 같은 환자들은 진료시간의 뒷쪽으로 배당합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갈수록 진이 빠집니다.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에게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사의 얼굴은 무표정한 것이 더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불호를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고

환자들에게 심리적으로 나쁜 영향을 덜 미친다고 합니다.

한번 좋다고 같이 좋아하고

한번 나쁘면 같이 침울해 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

환자의 정서에 더 좋지 않다고 하네요. 

일관된 모습으로 환자를 대할 줄 아는 것이 종양내과 의사가 가져야 할 미덕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저도 아직 사람인지라

그런 표정관리를 잘 못하고 내 마음을 얼굴에 다 드러냅니다. 


의사의 사소한 몸짓 하나, 사소한 말 한마디도

환자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아직 아마추어 의사인것 같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설픈 설명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려워서 의사들끼리도 난관에 부딫히는 사항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의사의 설명을 듣고 다 이해하는 것 보다

그냥 의사를 믿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의사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병의 시작부터 저랑 인연을 맺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환자도 있지만

그런 라포를 채 형성하지 못한 채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여 내 말을 내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저도 환자와 가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구요. 


오늘 제 진료실에서

큰 슬픔과 분노를 안고 나가신 분이 계십니다. 

저는 아직 훈련과 수양이 더 많이 필요한 의사인것 같습니다. 

아직 그런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다음 환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순자 2013.10.22 10:21

    선생님!!
    독감 폐렴주사 맞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타이레놀 먹고 은행나무숲 다녀왔습니다
    낙산사 바다 코로 숨쉬기 입으로 숨쉬기
    제몸에 있는 구멍들 가을 공기에 취해
    호사를 누립니다
    하루쉬고 가을 소 금강산 소금강
    제몸에 난 구멍들이 또 호사....
    계속 타이레놀 복용해야했습니다 쳐져있는것보다
    나았습니다
    다시 불면증이 생겨 약먹고 좀 잡니다 ㅎㅎ
    불면증 관절통 근육통 이딴거 이젠 다 익숙해지고 문제없어요
    암도 다시 활동하려면 하라지요 시간이 흐르는데요 뭐...
    의연히 지내지만 검사결과 보는 외래시간은
    대기 1분전부터 가슴뛰고 다리후들거리는거 늘 그러네요
    만약 결과가 않좋더라도 급 실망하고 분노하는건
    제 스타일 아니지만 막상 닥치면 저도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오늘 블로그에 선생님 글 있어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지치실때마다 잠시 창밖 내다보며 스트레칭이라도요 쌤~~
    응원합니다 쌤~
    저도 잘 지내겠습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31 05:47 신고

      내 주위의 좋은 경치들 잘누리고 계신거 같아 부럽습니다.
      항시 몸도 찌뿌뚱하고 순간적으로 마음에 불안함이 오지만
      일상적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다지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저도 응원할께요.
      늘 감사합니다.

  • 윤경아 2013.10.22 11:50

    제가 항암 1차 지나고 샘이 제 가슴 눌러보시곤 화들짝 놀라시며 많이 줄었다고 기뻐해주셨을 때 저도 넘 좋았지만...저희 친정엄마는 이후 걱정근심이 사라진 듯해요. ㅋㅋ 정말정말 감사했어요~~~^^
    오늘은 4차 마치고 유방촘파 하러 온 날입니다. 온 김에 저도 안산에 함 가볼까 해요. ㅎㅎ 물어물어 가볼라구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31 05:49 신고

      안산은 다녀가셨는지...
      이제 치료의 반이 지나가는군요.
      너무 먼 미래를 보지 마시고
      이번 주기가 무사히 넘어가도록 그것만 신경쓰세요
      에반겔리온? 책 이름이 그거라고 하셨나요?
      서점가면 한번 볼랍니다. ㅎㅎ

  • 2013.10.22 23:05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0.31 05:52 신고

      항암치료로 인한 저림은
      대개 발끝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오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벅지 바깥 쪽 저리는 증상이 원래 있었던 건지
      최근에 나타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지금 말씀하시는 건 척추쪽 증상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디스크나 척추관 협착증 때 표현하시는 양상같은데
      그건 엑스레이 찍어보고 의사가 진찰을 해봐야 합니다.
      항암치료와 관련된 신경저림 증상은 6개월에서 2년까지 지속될 수 있으니 결국 경과관찰하고 심할 때는 약 먹으면서 버티는 거구요
      항암치료와 관련이 없는 다른 척추 병이라면
      일반 정형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면 될 거 같습니다. 일단 MRI 같은 고가의 힘든 검사보다는 단순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보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에 우리 병과는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다른 카테고리의 글 목록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