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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

유방암 진단 후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강좌를 개최한 날이다.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추적관찰 중인 그들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환자'라는 표현보다는

외국에서는 'Cancer Survivor', 우리말로 하면 '암 생존자'라고 번역되는데,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암 경험자'가 더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유방암 치료를 일단 끝낸 분들이다. 

다른 암에 비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많고 

항암치료 기간도 길며, 

수술도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하고, 

1년간 표적치료제도 쓰고, 

5년간 호르몬제도 쓰는, 치료가 복잡한 병이다. 

   

나는 그들에게 유방암 치료가 끝난 후 발생할 수 있는 장기 합병증 가운데 신체적 측면에 맞추어 강의를 하게 되어 있다. 



의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하는 발표는 

영어로 슬라이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인용을 할 때는 반드시 참고문헌을 밝혀야 한다. 각주 설명 다는 것이 일이다. 

혹은 자기가 연구한 성과물이나 실험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라면 연구 가설에 맞게 결과를 조합하여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데 - 발표를 준비하게 된다.

발표를 듣는 청중과 발표자 간에 기본적인 지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으므로 

기본적인 전제는 생략하고 다이렉트하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

그 나름으로 어렵다.  


한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발표는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게 중요하다. 

그림이나 사진, 그래프를 보기 좋게 넣고

가능하면 슬라이드에 글을 줄이고

쉬운 말로 설명하여 

청중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환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하더라도 

배경적 지식을 무시하거나 참고문헌을 밝히는 것에 소홀하면 안되겠지만 

그 자체에 치중하기 보다는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핵심 메시지가 잘 이해되는 방식으로 슬라이드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자꾸 발표를 하다보면, 슬라이드의 포장과 편집에 집착하게 된다. 슬라이드 쇼를 구성하거나 슬라이드 바탕화면과 디자인, 글씨 색깔, 선 굵기 그런 형식적인 요건들에 점점 집착하게 된다. 그런 외형적인 포장보다는 핵심 메시지를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너무 자세히, 빡빡하게 설명하는 것도 별로고

너무 두리뭉실, 교육적 효과를 상쇄하는 그런 발표도 별로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인지 환자 눈높이에 맞추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알고 보면 환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잘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평소에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많이 질문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잘 설명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좋을 것같다. 


의사는 환자들의 질문을 받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지 

그런 심정을 잘 담아서 말이다. 


어떤 날은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개똥쑥이 면역성을 증진시키는데 먹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하신다. 

어떤 날은 아사이베리로 질문이 바뀐다. 

아마 전날 TV에 나왔나 보다. 


똑같은 답변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은근히 짜증이 난다.

그러므로 이렇게 환자와 일반인 대상으로 한 대중 강의는 교육적 차원에서 매우 소중한 기회이다.

정기적으로 주제를 잡아서 일종의 시리즈처럼 제공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 의사의 강의는 지루하지 않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이 내용의 연속선상에서 환자 교육용 강의가 제공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교육과 강의는 의학적으로 적절한 범위 내에서 검증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사실 검증되지 않은 교육과 강의들은 너무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강의를 듣기 위해 온 분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 혹은 학문적인 목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건강과 미래, 내 존재의 안전성을 의식하며 

애가 타는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예후, 위험요인, 합병증 이런 주제들을 언급할 때는 단어 한개를 선택할 때에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지난 달 

유방암 치료 후 3-4년이 지난 암생존자/경험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번 교육을 받고 나서 유방암 네비게이터 - 유방암 치료 중인 환자들을 돕고 지원하는 지역 사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자원 봉사자 - 로 활동할 예정인 분들이었다. 

유방암 환자들과 상담하고 그들을 지원하려면

유방암에 관한 의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련된 교육의 장이었다. 나는 그들을 대상으로 유방암 일반에 대해 교육을 하게 되었다.


나는 유방암의 특징 - 다른 암에 비해 내부적인 세부 아형이 나뉘어져 있고 그 세부아형별로 재발이나 질병 진행의 특징이 다양하다는 것, 5년이 지나도 재발할 수 있다는 것, 공격적인 타입의 삼중음성유방암은 2년을 기점으로 재발 여부에 대해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 HER2 양성 환자들의 재발 양상은 어떻다는 것 등등 - 을 설명하였다.

내가 언급한 사실들은 

이미 잘 정립되어 있는 주제이고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늘 염두에 두는 내용들이었다. 

내용에 특별한 사항은 없다.

나는 소위 과학적 지식(scientific knowledge) 을 말한 것이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유방암의 특징들에 대해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의를 듣는 청중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삼중음성유방암으로 치료를 마친지 이제 막 2년이 지난 사람은

내 강의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다들 자기의 조건을 염두에 두고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암을 진단받고 치료받았다는 것, 

지금은 괜찮지만 여전히 재발의 위협이나 치료의 장기 후유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그것은 왠만한 노력과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지식을

환자와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민도 많이 필요하고

의사로서의 경험과 연륜도 필요한 것 같다. 

진료실에서 한 명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디테일에 얽매여 사느라 큰 그림 그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에서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있지만

믿을만한 정보를 얻기 힘든 환자와 가족, 암생존자/경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해 보도록 해야겠다.


방금 완성한 슬라이드 파일을 가지고 

강의장소로 출동!

 

 





  

 

  • 2013.11.01 10:36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1 13:28 신고

      걱정하시는 맘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아이를 위해 추천할만한 유전자 검사는 없습니다.
      또한 다른 어떤 검사라도 미리 좀 해보는게 나을지 그런 것도 없습니다.
      운동많이 시키고 많있는거 많이 먹이고
      그러면 될거 같습니다.
      오랫만에 방문해 주시기 반갑-이런 말이 좀 그렇지만- 습니다.
      아이들과 Gravity 보세요
      준서랑 같이 보는거 괜찮을 거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괜찮구요.

  • 워니아빠 2013.11.01 14:09

    제 아내는 survivor에 못들어 갈것 같네요.
    젊은 사람이라 예후가 않좋은 건지 그동안 6년동안 항암만 줄창나게 하다가 이제는
    쓸약도 별로 없네요.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어디 시원하게 말할데도 없고 답도 없고...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 병에 괴로워 하며 아이걱정, 제 걱정...
    얼마나 힘들까요. 불쌍한 제아내.
    암환자 카페도 열심히 드나들어 봤지만 이제는 왠만하면 제 아내보다 별로 안 심하고...관심 주제 자체가 많이 달라졌어요.
    고칼슘혈증이 왔는데 이것이 몇개월 남지 않았다는 싸인이 되는 건지 궁금해서 글남깁니다.
    한번도 뵙지도 못한 선생님이지만 이곳에 글을 남길수 있어 자그마한 위로가 됩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01 22:00 신고

      뼈전이가 있으신가 봅니다.
      고칼슘혈증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사람이 자꾸 늘어지고 기운도 없고 쳐집니다. 그리고 특정부위가 아닌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지요. 결국 병 자체를 콘트롤해야 고칼슘혈증도 해소됩니다.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응급조치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위기는 넘길 수 있지만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이벤트도 반복되고 환자도 많이 고생하는거 같습니다.
      제가 치료 병력이나 지금 상태를 모르지만
      고칼슘혈증 자체가 위험요인이나 예후를 결정한다기 보다는
      이후 치료적인 접근이 가능한지 여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련 증상을 잘 알고 있다가 이상 징후가 보이면 빨리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고 필요시 조치를 하는게 필요하겠네요.
      섣부른 위로나 대안을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치의가 아니니 그만큼은 이해해주실 것을 믿으며...

  • 준서아빠 2013.11.02 10:20

    안녕하세요. 전에 댓글 몇번 본기억이 있는데요. 저와 애들 엄마는 이 싸움에서 이기진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선생님 블로그에 일부러라도 와지질 않더군요. 추억과 기억과의
    싸움을 피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하지만 꼭 워니엄마는 잘되실거에요.

    저도 약간은 남편분 심정이 와닿습니다. 그래서 또 힘드네요... 꼭 이기실겁니다.
    오늘이 마지막인것 처럼 많이 같이 얘기도 하시고 얘들 상의도 같이 하시고 하셔요.
    사랑하고, 했고, 할거라고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저는 블로그에 오는게 이래서 힘들군요... 그럼...

  • 나무야 2013.11.04 10:01

    교수님~- 삼중음성은 수술이나 항암후 시간이 지날수록 재발이 줄어드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2년을 지나는 시점에 재발이 높은거에요? 2년 이전 재발율이 2년 이후 재발율보다 높은줄 알았거든요.

  • 워니아빠 2013.11.06 11:07

    감사합니다. 선생님 많은 힘이 되었어요.

  • 2014.06.12 14:37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4.06.14 11:26 신고

      언제 답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ER이 negative 이면서 PR만 positive 인 경우는
      명목적으로는 luminal type 이지만
      사실상 시간이 지나면서 triple negative 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2014.07.26 15:28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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