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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래는

원래 내가 보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날이 아니다.


항암치료 중에 기운이 없어 영양제를 맞고 싶은 사람

갖고 있는 약 이 떨어져서 약 타러 온 사람.

항암치료 하다가 부작용에 생겨서 증상 상의하러 온 사람.

백혈구 수치 떨어져서 촉진제 맞으러 오는 사람.

그런 환자들이다.


내가 담당 주치의가 아니므로

그들 치료 과정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내릴 필요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부담없이 진료를 보면 된다.

당장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된다. 


피검사 보고 백혈구 수치 낮으면 촉진제 주고

수혈이 필요하면 수혈 처방 해주고 

진통제 조절이 잘 안되서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조절해 주고

너무 아프다고 하면 입원장 주고 

약 필요하다고 하면 그 약 처방해 주고

그런 식이다. 


그래도

미리 예습을 한다.

어떤 환자인지는 알고 봐야 하니까.


내 환자가 아니라 병력 정리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 이해가 잘 안된다.

(꼭 자기 방식으로 환자를 정리하려는 집착만 남아있는것 같다.) 

치료 과정 중 이땐 왜 이렇게 했지 궁금해서 당시 차트를 찾아 보거나 수술 결과,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해 본다. 

어쨋든 내 방식으로 환자를 이해하고 외래를 들어가야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토요일

바삭바삭 메말라 가는 가을 나무들에 애착이 간다. 

외래 끝나자 마자 산에 가볼 참이라 신발은 아예 등산화를 신고 출근했다.

산에 가는 복장으로 외래에 오실 분들을 리뷰해 본다. 



10년전에 28세 아가씨가 대장암을 진단받았다. 당시 가족성 대장 폴립증도 같이 진단받았다. 

그리고 이후 2번 재발되었다. 매번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였다. 뱃속 수술을 하면서 난소에도 전이가 있어 두개 다 절제된 상태이다. 이제 30대 중반인데 심한 골다공증, 신부전 3기 상태. 수술의 합병증으로 요로 협착이 생겨 올 초에는 요관성헝술을 했다.

그리고 지난달 복강 내 대장암이 재발하였다. 다시 시작한 항암치료.

가족성 대장 폴립증이 잦은 재발의 위험 인자인것 같다. 그래서 첫 수술 때 전 장 절제술을 했는데도 복강내 림프절에서, 수술 문합부위에서 재발을 반복하고 있다. 


그녀는 거의 10년간에 걸쳐 우리 병원을 다니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다른 과 외래 기록을 보니 '어머니만 내원하심' 이라는 메모가 쓰여있다. 

환자가 검사만 해 놓고 엄마에게 결과를 듣고 약을 타오라고 하나보다.

차트에서 환자의 흔적을 느끼기가 어렵다.

항암치료 후 너무 기운이 없어 오늘 영양제를 맞고 싶다고 메모가 되어 있다.

나는 별 말없이 영양제를 처방하고 '잘 견디세요' 라는 말을 한마디하고 말겠지만

그녀에게 참으로 혹독한 시간일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녀를 만날 일이 두렵다. 




40대 후반의 여자.

이번이 세번째 암이다.

유방암.

갑상선암.

육종.

어떤 유전성 질환 혹은 가족성 질환이 아닐지 의심이 된다. 

그녀의 젊은 날에 띠엄 띠엄 암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치료하고 있는 육종은 한번 수술하고 재발된 상태라 항암치료 용법도 복잡하고 약제의 독성도 심하다. 항암치료를 하기는 하지만,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 아직 별다른 신약도 없다. 지방에 사는 그녀는 자주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고 열도 많이 나는 치료다. 두달 전에도 내가 한번 본적이 있다. 


그때도 난 미리 그녀의 차트를 리뷰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진료를 준비했는데 

왠걸, 

그녀는 아주 발랄하고, 

외모는 아줌마 같지도 않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다 컸고, 

아주 맹렬히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이었다. 

미리 걱정하고 혼자 우울해 했던 내가 무색했다. 

내가 상상하는 세상이 다 맞는 것은 아닌것 같다. 

차트를 리뷰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환자가 나를 만나고 진료실을 나가는데는 3분도 안 걸렸다. 

아주 마음이 가벼웠다. 




선입견을 가지고 환자를 만나면 안되겠다. 

객관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해법을 가지고 자신만의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일상은 

그렇게 울면서, 찡그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 모두는 나름의 합리화 기전도 만들어 내고, 탈출구도 만들어서, 지금을 견디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보는 나같은 의사에게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씩씩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치료받고, 

오랜 치료 기간에도 지치지 않고 자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에게 한수 배우러 

외래로 고고씽!  

그리고 안산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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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한 우주 2013.11.09 17:11

    지난 정기검진 때,
    의사 선생님 옆에 앉아 무언가 해주실말을
    다소 긴장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모니터에 펼쳐진 내 차트와 사진들을 보시면서
    조용히 "어제밤에 제가 쭉 살펴보았는데..."

    어제밤에 미리 살펴보셨다는 말에
    마냥 고맙더라구요.
    명쾌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의사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든든하게 따뜻하게 다가와졌습니다.

    그런거겠죠~ㅎ

    1. 달콤한 우주 2013.11.09 17:14

      ㅎ..듣고 싶은 말 베스트4의 덧글인데
      잠깐 나갔다 들어오면서
      잘못 달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2.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1.10 10:00 신고

      기억하겠습니다.

  • 2013.11.10 14:13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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