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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랑 동갑. 

뇌로 전이된 지 2년이 되어 간다.

뇌 말고는 전이된 곳이 없다. 


뇌 수술을 했지만 위치가 너무 깊어서 수술을 완전히 깨끗하게 할 수 없었다. 

방사선 치료를 더 했지만 

여전히 뇌에는 병이 남아 있다.

그대로 놔두니 병이 커지는 것 같아서 젤로다 없이 타이커브만 먹고 있다.


전이된 병의 위치는 

우리 몸의 호르몬을 관장하는 Pituitary gland 근처, 그리고 hippocampus.

그래서 뇌 수술을 한 후 자기 스스로 필요한 호르몬 분비를 못하기 때문에 각종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

우리 몸의 호르몬 시스템은 

어디가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이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나오고, 

어디가 많으면 다른 곳에서 이를 자극하는 호르몬을 줄여서 균형을 맞추는 조절 기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주게 되면 상호간의 상태에 따라 조절이 되는 기전이 작동되지 않아 여러가지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고 순식간에 환자 상태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는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소변량이 늘어나 하루에 8000cc 까지 소변을 보기도 하고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서 스테로이드를 보충하기도 하고 

암튼 갑작스러운 일이 많았다.

약 한알만 조절해도 몸 상태가 급격하게 변한다. 겁나서 약을 끊거나 줄이거나 더할 수가 없다. 


그리고 환자가 쉽게 잠이 든다. 

병변이 각성과 관련된 부분인데 아직 병이 남아있다보니 자꾸 자려고 한다. 조금만 한눈을 팔고 있으면 어느샌가 환자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낮에는 그녀를 깨워서 여기 저기 산보 다니는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낮에 잠을 자버리면 밤에 잠을 잘 못자고 컨디션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환자가 애기처럼 된거 같다. 퇴행 (regression) 하는 느낌이다.  



그런 그녀 옆에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신다.

자기 딸처럼 잘 봐주신다.


그래도 가족만은 못한 거겠지?

주말이면 남편이 와서 간병인 아주머니와 교대를 한다. 

남편은 이런 생활이 힘들 것이다. 

주중에는 직장일, 주말에는 부인 간호.   

부인은 예전의 그 부인이 아니다. 애기같은 존재가 되었다.

원래 착하고 좋은 남편이었지만 

아무리 좋은 남편이라도 지금 이 시간들이 그리 쉬운 시간이 아니다.

돈도 많이 들고 

간병에도 지치고

그래서 일요일 밤 간병인 아줌마가 돌아오시면 바로 집으로 가신다. 

하나뿐인 딸에게 엄마는 부재상태다.


나는 이 환자를 첫 진단부터 치료, 재발, 그리고 수술과 재활 그 전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퇴원을 고려해도 될만큼 이제 겨우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유리 그릇같이 깨지기 쉬운 상태이다.    



오늘 오랫만에 남편과 함께 있는 환자를 보았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환자가 간병인 아줌마와 있을 때와는 달리 

컨디션이 아주 좋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더 졸려하고 말도 어눌하게 하는거 같고 멍한 상태로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남편과 같이 있으니 영 또랑또랑하다. 표정도 맑고 단정하다. 말도 똑부러지게 잘 하는것 같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도 잘 안한다. 뇌가 각성상태로 유지되는 것 같다. 


남편은 많이 지친 표정이지만 그래도 잘 견디고 있는것 같다. 

이미 예전같지 않은 아내를 

예전같이 한결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라고 

그 누구도 남편에게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남편은 최선을 다하고 부인을 간호하고 있다.

아내도 최선을 다해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니 외롭고, 명확한 의식세계에서 분리된 자신이 외롭더라도 말이다.   


그는 자꾸 잠들려고 하는 그녀를 이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다.


여러 이유로 뇌기능이 떨어져 있는 환자들,

멍해 있다가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순간 빛이 난다. 

순간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그것이 

가족의 힘이고

사랑의 힘인것 같다.


그러니 사랑이란 얼마나 가혹하고 힘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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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한 우주 2013.12.23 11:10

    통증 하나 잡아놓으면 황달수치가,
    황달수치 겨우 조절해 놓으면
    소변이 안나와 이뇨제를,
    가려움증은 약 때문인지, 황달 때문인지 내내 가려우니
    가족 모두 총 출동해 물수건으로 두드려 주고
    로션이나 오일을 바르고, 바르고...

    해서 의사 선생님 고민 고민해 약 들을 바꿔 주시니
    이젠 환각증상이...
    간성혼수라 하기엔 좀 다른 양상인건가 지켜보자고 하십니다

    오늘은 패치외에 약을 좀 끊어보신다고 하시는데...
    정말 깨질 것 같은 유리처럼 하루 하루가
    순간순간이 조심스러워요.

    복수와 부종이 심해져
    속옷 치수가 자꾸 높아져 가고,
    상대적으로 더 얇아지는 팔, 다리...
    갑자기 숨이 자꾸 차오르는 증상이 나타나
    CT를 찍어보니 심장까지 암이 전이되었다고 해요.
    그새...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겠다는 형부의 말에
    가족들 힘겹게 동의하고 이 싸움 사이사이
    자녀들과 가족들의 집중 사랑에 조금이나마 위로삼았으면 좋겠어요.

    평생을 아픈이를 위해 나누기만 하더니
    이젠 우리에게 한꺼번에 받으시는거란 이야기에
    노란 눈을 힘겹게 치켜들며 고개를 끄떡이는 울 형부...
    넘 참지 말고 힘들지 않기를 기도해요.

    선생님도 기도해 주실래요?

    1. BlogIcon 이수현 슬기엄마 2013.12.23 19:01 신고

      최선을 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고
      마음을 다 정리한 줄 알았지만
      삶과 사랑에 대한 마음으로 안타까움을 접을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의 마음입니다.
      지금 진료해주시는 선생님이 이래저래 마음 많이 써주시는 것 같으니
      다행인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것이
      환자의 운명인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어요...
      그저
      초라한 나의 기도 한마디
      하느님께서 높이 사 주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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