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이수현 슬기엄마 2013. 12. 27. 16:58


사랑보다

정이 무섭다.

사랑은 한순간의 열정 이후 식어버리지만

정은 식지 않는다.

일단 정이 들면 미워도 버릴 수 없다.

욕하고 심하게 말싸움을 해도 등 돌릴 수가 없다.

그게 정이다.


나는 내 환자들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예전에는 환자를 보다가 화가 나면 목에 힘을 꽉 주고 말했었다. 미워서.

나를 못살게 굴고

내 말 안듣고

그랬던 그들이

병이 나빠지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생로병사의 외로운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아마 내가 보는 환자들이 

암환자라서 그런 것 같다.

조기 유방암 환자들은 항암치료만 받고 훌쩍 떠나버리지만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죽을 때까지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긴 병의 여정에는

벼라별 일들이 생긴다.

그 모든 것들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라 속상하고 당황하고 실망하고 두렵다. 

난 그들에게 

내 엄마한테 하는 것만큼은 못해도

내 이모한테 하는 것만큼은 해주고 싶었다.

이모가 사뭇히게 보고싶거나 

이모에게 내가 항상 잘하는건 아니지만 

마음 속으로 이모를 생각하면

그래도 잘 해드려야지 그렇게 생각되는 사람 아니던가...


나는 우리 환자들을 내 이모로 생각하고 치료해 주고 싶었다.

아프고 힘들다고하면 재원일수 길어져도 그냥 계속 입원시켜 주고

갑자기 아프다고 연락하면 그날 외래가 없어도 따로 봐주고

수술이 필요하면 애써서 따로 수술 스케줄도 부탁하고

그랬었다. 

누구는 그런 나에게 

그놈의 오지랍 때문에 나는 망할거라고

그러다가 지쳐 나가 떨어질거라고 했지만

나는 최소한 그만큼은 해주고 싶었다.


왜?

내 환자들은 

결국 

다 

죽을 거니까...


난 그래서

그들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지난 3년동안

전이성 암 환자로

나를 만났던 환자들이 있다.

좋아져서 한동안 병원에 오지 않다가도

다시 나빠지면 나를 찾아온다.

나를 만나면 

한참을 울고 

때론 나를 원망하기도 하고 

때론 더 이상 치료받고 싶지 않다고 억지를 부리다가도 

결국 다시 치료를 시작하고 다시 삶을 시작하였다.

그들과

깊은 정이 들었다. 


수요일 성탄절 때문에 

오늘로 외래가 연기된 사람들이 많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지연되었고

병이 나빠져서 약을 바꿔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1시간 넘게 기다렸다 나를 만나야 하는 환자들이나

병이 나빠졌다는 나쁜 소식을 듣고 약을 바꿔야 하는 환자들이나

오늘은 다들 별 말씀이 없다.

그냥 묵묵히 내가 하라는 대로 하시겠다고 한다.

그렇게 순순히 내 말을 들어주니

그냥 더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정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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